14일 쿠바 중부 도시 모론에서 정전과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공산당 사무실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 중단 이후 악화된 에너지 위기가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 연합뉴스

쿠바에서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停電)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공산당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쿠바 국영 매체는 14일 중부 도시 모론(Morón)에서 정전과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대 일부가 공산당 건물 창문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면서 폭력 사태로 번졌다고 보도했다. 일당제 국가인 쿠바에서 공산당은 쿠바의 유일한 합법 정당이다. 정치적으로 억압된 쿠바에서 공개적 반(反)정부 시위는 드문 일이다.

사태의 배경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 위기에 있다.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중부 카마궤이에서 서부 피나르델리오에 이르는 약 700km 구간을 비롯해 국토의 65% 이상이 동시에 대규모 정전을 겪었다. 일상이 된 정전에 대중교통이 멈춘 수도 아바나의 시민들은 이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전기 대신 석탄이나 나무 땔감을 이용해 빵을 굽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 수거 차량 운행마저 중단되면서 도심 곳곳에 악취도 진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쿠바의 에너지 위기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급속히 악화됐다. 쿠바의 최대 에너지 공급국이던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 작전으로 체포된 뒤,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대(對)쿠바 수출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쿠바 경제는 즉각 충격을 받았고, 전력·교통·의료·교육 등 사회 전반에 연쇄적인 타격이 나타났다. 특히 대표적 ‘외화 벌이’ 업종이던 관광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관광업은 연간 약 13억달러(약 1조9400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이며 쿠바 경제를 떠받쳐왔다. 그러나 항공기 연료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항공편 취소와 호텔 폐쇄가 잇따랐고, 관광업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지난 13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한 여성이 어린이의 등교를 돕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미국의 쿠바 압박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쿠바 체제 붕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트럼프는 “내 생각에 쿠바는 실패할 것 같다” 등의 발언으로 연이어 쿠바의 ‘항복’을 종용해왔다. 지난달에는 “아마도 우리는 쿠바를 우호적으로 접수(friendly takeover)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지난 7일에는 “쿠바는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다. 그들은 협상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도 지난 13일 국영 TV 연설에서 미국 측과 대화를 진행했다고 밝히며 “국가의 중요한 여러 사안과 양국 간 이견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쿠바 정부가 에너지 위기 이후 미국과의 대화를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에너지 위기가 빠르게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