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 안보회의에서 이란 망명 왕세자 레자 팔레비가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 옛 팔레비 왕정의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66)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전해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7)의 사망 소식에 대해 “이슬람 공화국의 사실상 종말”이라고 규정하며 군과 경찰, 국민에게 정권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다만 망명 상태에서 수십 년간 해외에 머물러온 팔레비가 실제 권력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팔레비는 지난달 28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이라고 글을 시작하며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이슬람 공화국은 사실상 끝났고, 머지않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 체제 잔존 세력이 후계자를 임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든 정당성과 지속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군과 경찰, 보안기관을 직접 겨냥해 체제 수호 대신 ‘이탈’을 촉구했다. 팔레비는 “군과 법 집행 기관, 그리고 모든 보안 조직에 고한다”며 “붕괴하고 있는 정권을 지키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국가와 함께할 마지막 기회이며, 이란이 자유롭고 번영하는 미래로 안정적으로 전환되도록 돕고, 그 미래를 건설하는 데 동참할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여성이 이란의 레자 팔레비(왼쪽 사진) 망명 왕세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든 채 환호하고 있다. 이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이란 국민을 향해서도 행동을 주문했다. 그는 “범죄자 하메네이의 죽음은 이미 (시위로) 흘려진 피를 되돌릴 수는 없다”면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그리고 이란의 ‘사자와 태양’ 민족 혁명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의 가족이 입은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치유의 손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대적이고 결정적인 거리의 시간이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며 “우리가 단결하고 굳건히 나아간다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고국에서 이란의 자유를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팔레비는 이란 왕정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의 장남으로, 1960년 테헤란에서 태어나 1967년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러나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으로 친서방 팔레비 왕정이 붕괴되면서 미국에 머물던 그는 귀국하지 못한 채 망명 생활을 이어왔다. 이후 미국 등을 중심으로 반(反) 이슬람 공화국 운동을 벌이며 해외 이란인 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그는 2013년 망명 정부 성격의 조직을 구성해 현 이란 정권에 대한 반대 활동을 제도화했고, 지난해 12월 이란에서 신정 체제 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일부 시위대가 왕정 복고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정치적 상징성이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지난달 뮌헨안보회의(MSC) 현장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이슬람공화국을 끝낼 때”라며 “정권을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려달라는 것이 동포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정치적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0여 년간 이란 본토에 발을 들이지 못한 망명 지도자인 데다, 현재 이란 권력 구조는 혁명수비대와 성직자 중심으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당국도 하메네이 사망 이후 권력 공백은 혁명수비대나 기존 권력 엘리트 내부 인물이 메울 가능성이 크며, 팔레비 왕조 복귀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사실이 알려진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럼에도 팔레비가 하메네이 사망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정권 붕괴와 체제 전환을 촉구하면서, 이란 권력 공백 국면에서 망명 세력의 정치적 움직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이란 내부 반정부 세력과 해외 망명 세력에 상징적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란 정국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