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탄핵으로 물러나는 호세 헤리 페루 대통령 / AFP 연합뉴스.

페루에서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취임한 임시 대통령이 4개월 만에 또다시 탄핵됐다. 최근 10년간 7명의 대통령이 등장하며 정치 불안이 만성화된 가운데 오는 4월 대선을 앞두고 정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됐다.

페루 국회는 17일 임시 본회의를 열고 호세 헤리(40) 대통령 탄핵안을 의원 130명 중 75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10월 디나 볼루아르테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의장 자격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헤리는 오는 7월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정부를 이끌 예정이었다. 이번 탄핵의 결정적 배경은 최근 불거진 중국인 사업가 양즈화와의 유착 의혹이다. 검찰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최근까지 양즈화와 여러 차례 접촉한 헤리가 권력을 이용해 사업 편의를 제공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헤리가 이목을 피하기 위해 후디(hoodie·모자 달린 옷)를 뒤집어쓰고 양즈화를 만나러 한 중식당에 들어서는 장면이 공개돼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이 만남이 ‘치파(chifa·스페인어로 중국 음식점을 의미) 게이트’로 번지자 다급해진 헤리는 직접 사과했지만, 부적절한 처신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페루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직무 수행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가 심판 절차 없이 바로 탄핵할 수 있다. 현재 국회는 확실한 다수당 없이 여러 세력으로 파편화돼 있어서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담합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기가 비교적 쉬운 구조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마틴 카시넬리 연구원은 로이터에 “이번 (헤리) 축출은 정의보다는 정치적 사리사욕에 따른 행위에 가깝다”고 했다.

페루에서는 정치권의 부패와 극심한 양극화로 대통령 탄핵·퇴진이 되풀이되고 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6년 7월 이후 현재까지 헤리를 포함한 7명의 대통령이 집권했다. 이 가운데 선거로 뽑힌 대통령은 2명뿐이며, 나머지는 전임자 탄핵 등으로 자리에 올랐다.

현재 의장 직무대행 체제인 페루 국회는 곧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새 의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해당 임시 정부에서 4월 대선을 실시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6월에 1·2위 간 결선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