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정치 지도자 후안 파블로 과니파가 지난 8일 수도 카라카스의 엘리코이데 교도소에서 석방된 직후 미소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의 군사 작전으로 지난달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그간 베네수엘라에서는 정치범 석방과 사면 입법이 병행되며 ‘화해·전환’의 신호가 감지돼 왔다. 그러나 야권 핵심 인사의 석방 직후 재체포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같은 국면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후안 파블로 과니파(62) 전 국회부의장이 있다. 법조인 출신으로 서부 술리아주(州) 주지사 등을 지낸 그는 야권을 대표하는 정당 ‘정의제일’ 소속의 중량급 정치인이다. 2017년 지방선거 당시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해 제헌의회 선서를 거부했다가 파면된 뒤, 줄곧 마두로 정권 퇴진 운동의 선봉에 섰다. 2024년 대선 국면에서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9)를 비롯한 야권 세력을 도우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는 대선 과정에서 ‘테러 모의’ ‘증오 선동’ 혐의 등으로 지난해 5월 체포돼 8개월 넘게 구금 생활을 했다. 국제 인권단체와 야권은 이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며 반발해 왔다. 이런 가운데 베네수엘라 인권단체 포로페날은 지난 8일 과니파가 석방됐다고 밝혔다. 포로페날은 당시 과니파를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체제 출범 이후 석방된 최고위급 정치범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지도자 후안 파블로 과니파의 아들인 라몬 과니파가 지난 9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친의 재체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마두로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로드리게스 체제가 정치범 석방 계획의 일환으로 과니파를 포함한 최소 18명의 야권 인사를 풀어주면서, ‘정치적 화해’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과니파의 석방은 오래가지 않았다. 과니파는 풀려난 지 몇 시간 만에 신원 미상의 남성들에게 다시 붙잡혔다. 현지 일간 엘나시오날과 EFE통신에 따르면 정의제일은 과니파의 아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석방 직후 다시 납치한 것은 명백한 공포 정치”라고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검찰은 “의무 사항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았다”며 가택연금 전환을 위한 법적 절차라고 맞섰다.

이에 과니파의 아들 라몬 과니파는 지난 10일 부친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아버지가 마라카이보 자택에 머물고 있다”면서도 “가택연금 역시 감금과 다를 바 없다”며 완전한 석방을 촉구했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마두로 정권 축출을 주도한 미국 정부 측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AP 연합뉴스

이번 석방·재체포 사태는 로드리게스 체제가 표방해 온 유화 기조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과의 소통 속에 원활한 체제 전환을 위해 정치범 석방과 사면을 병행하면서도, 이 같은 과정에서 치안과 통제권은 여전히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음을 과시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사면법을 매개로 야권 내 온건·강경 세력을 가르는 ‘선별적 사면·복권’ 전략이 가시화됐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로드리게스 체제가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온 마차도를 위시한 야권 세력이 차기 권력을 차지할 가능성은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