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실시된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우파 국민주권당(PPSO)의 라우라 페르난데스(39) 후보가 48%를 득표해 압승하면서 두 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됐다. 로드리고 차베스 현 대통령의 경제장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결선 투표 없이 승리할 수 있는 득표율(40%)을 훌쩍 넘겨 좌파 국민해방당(PLN) 소속 알바로 라모스(33%)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코스타리카 대선이 결선 투표 없이 마무리된 것은 PLN 소속 라우라 친치야 후보가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2010년 이후 16년 만이다.
이날 함께 치른 총선에서도 PPSO는 57석 중 31석을 확보해 과반을 달성했다. 4년 전 선거에서 차베스는 1차 투표에서 17%를 얻은 뒤 2차에서 힘겹게 역전해 당선됐고, 집권당은 10석만 얻는 여소야대 구도였다. 하지만 4년 뒤 우파 집권 세력이 대선·총선 모두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둔 것이다. PPSO는 중도·좌파 정당들의 영향력이 강했던 코스타리카에서 선명한 우파 노선을 앞세우고 강력한 치안과 법질서 구축을 주창해왔다. 마약 등 강력 범죄 확산과 불법 이민자 급증으로 몸살을 앓아온 이 나라 국민들이 우파 세력에 몰표를 주면서 ‘블루 타이드(blue tide·중남미 우파 정권 연쇄 집권)’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해안’을 뜻하는 코스타리카는 다수의 중남미 국가와는 달리 오랫동안 안정을 누렸고, 이웃 나라들의 갈등 조정자 역할도 해온 나라다. 1948년 내전을 겪은 뒤 영구적 평화 추구 정책의 일환으로 군대를 없애고 국방 예산을 교육·보건 예산 등으로 전환했다.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뛰어난 자연 풍광 덕에 ‘중남미의 스위스’로 불렸고, 온건 좌·우파 정파가 정권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악화된 중남미 상황이 나라 분위기를 바꿨다. 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과 연계된 마약 밀매 조직 유입과 살인 등 강력 사건 급증으로 민심이 동요했다.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907건과 879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최근 15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군대가 없는 코스타리카에서는 1만5000여 명의 경찰이 국경 순찰·마약 단속·국내 치안 질서 유지 등 업무를 전담하면서 치안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선거를 앞두고 페르난데스는 ‘범죄와의 전쟁’을 핵심 구호로 내걸고 현 우파 정권의 치안 정책을 더욱 강경하게 실행하겠다고 공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방식의 외국인 범죄자 즉각 추방, 이민 통제 강화, 처벌 수위 상향 등을 약속했다. 이웃 국가인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초강력 치안 정책을 참고해 초대형 교도소 건립에 박차를 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현 정권에서 엘살바도르 부켈레 정부의 기술·자문 지원을 받아 수도 산호세 인근에 짓고 있는 대형 교도소 ‘카꼬(CACCO)’와 같은 시설을 추가 건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를 약 2주 앞두고 코스타리카를 방문해 ‘카꼬’ 건립현장을 찾아 선거 개입 논란도 일으켰던 부켈레는 페르난데스 당선 확정 뒤 X에 올린 글에서 코스타리카를 ‘사랑하는 형제의 나라’로 칭하며 “당선인에게 전화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새 정부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볼리비아·칠레·온두라스 대선에서 우파 후보가 좌파 집권 세력에 승리하고 정권을 교체하며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연쇄 집권)’가 퇴조하고 ‘블루 타이드’가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코스타리카까지 블루 타이드에 올라타면서 관심은 오는 5월 콜롬비아 대선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2022년 대선에서 핑크 타이드 바람을 타고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가 좌파 출신으로 처음 당선됐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법조인 출신 우파 정치인 아베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쟈가 근소하게 1위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