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지난 3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베네수엘라인들이 미국 국기 등을 든 채 환호하고 있다. 마두로 집권 이듬해인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경제난과 인권 탄압 등을 피해 떠난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0%인 790만명으로 추산된다. /AP 연합뉴스

“많은 사람이 자유로운 베네수엘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트럼프가 우리에게 자유를 줬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부부를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이민자 호르헤 루이스는 미 CBS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거리로 나온 환영 행렬을 담은 방송 화면에는 베네수엘라·쿠바 출신 이민자들이 함께 환호하는 모습이 담겼다. 성조기를 몸에 두르거나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캠페인 모자를 쓴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마두로의 좌파 독재를 피해 해외로 이주한 베네수엘라인들은 미군의 작전을 지지하는 축제를 벌이며 환영의 뜻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모인 자리에는 “나는 트럼프와 함께한다” “자유로운 베네수엘라를 위하여” 등의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트럼프 사진과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반미(反美) 시위 장면이 주로 포착되고 있다. 주민들은 군사 작전으로 대통령을 축출한 미국을 규탄하거나 정치적 입장 표명을 꺼리는 분위기다. 오랜 독재로 시민 사회가 사실상 붕괴하고 정부 비판도 가로막혔던 정치적 환경 때문에 베네수엘라 안팎에서 국민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미국 지지하면 체포” 내부 단속

베네수엘라 정부는 5일(현지 시각) “미국의 군사 행동에 따른 것”이라며 관보를 통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군의 작전에 협력하거나 이를 지지·조장한 인물에 대해 즉각적인 수색·체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포고문에 따르면 집회·시위 권리 정지, 국내 이동 제한, 재산 압류 등이 포함된 이번 조치는 90일간 유지될 예정이며 연장될 수도 있다.

정부의 이런 대응 기조에 따라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반(反)마두로 여론이 위축되고, 침묵하거나 현실에 순응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노점상으로 일하는 더글러스 산체스는 로이터에 “불안과 절망을 느끼지만, 나가서 일을 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고 음식과 생필품을 사야 한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내에서 확산되는 반미 시위가 실제 여론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억눌린 상황에서 이들의 의견만 부각되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확산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뒤 이튿날인 지난 4일 튀르키예 공산당 당원들이 앙카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 정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밖에서도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지만, 이는 주로 현지의 좌파·공산당 계열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환호하고 있는데 정작 아무 상관도 없는 외국인들이 흥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외 국민은 “자유 환영”

마두로 축출을 환영하는 재외 베네수엘라인의 목소리는 향후 여론의 향방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마두로 집권 이듬해인 2014년 이후 현재까지 베네수엘라를 떠난 인구는 약 79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80%가량이 콜롬비아·칠레·페루 등 인근 중남미 국가로 향했고, 나머지는 같은 언어권인 스페인이나 대규모 이민 커뮤니티가 형성된 미국 등으로 이주했다.

UNHCR은 이를 “최근 중남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구 대탈출(exodus)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난민 사태 중 하나”라며 “만연한 폭력,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식량·의약품 및 필수 서비스 부족으로 수백만명이 나라를 떠났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대규모 베네수엘라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 사회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지난 3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베네수엘라인들이 베네수엘라 국기를 든 채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당국이 예전처럼 단순히 국내 여론을 통제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관리(run)하겠다”고 했고, 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국외 베네수엘라인 집단이 국제 여론과 외교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외부 민심’이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미래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베네수엘라의 민심은 폐쇄적인 내부보다 자유로운 외부에서 더 활발하게 분출되는 경향이 있다”며 “국내 민심은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국외 민심이 얼마나 고려되는지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부 민심도 사태 초기에야 국가적 분노에 따른 반미 감정이 클 수 있지만,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돌아설 수도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디아스포라(diaspora)

정치적 박해, 경제 위기 등으로 본국을 떠나 해외 여러 지역에 흩어져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국민 집단을 지칭한다. 단순 이민과 달리 고향과의 정서적 유대가 강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본국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국제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4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국민들이 베네수엘라의 자유와 민주적 전환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