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을 피해 미국 플로리다주 도랄에 체류중인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3일 거리로 나와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군의 군사 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3일 오후(현지 시각)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구치소에 수감됐다. 마약 테러 공모, 대규모 코카인 밀매, 기관총 및 폭발물 관련 범죄 등 혐의로 기소된 그는 이르면 이번 주부터 뉴욕 법정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마약 밀매·살인 교사 등 혐의로 1990년 미국에 압송돼 재판을 받은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는 법정에서 4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30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마두로는 수감 전 영어로 “굿 나잇,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지만, 그의 몰락과 함께 30년 가까이 이어온 베네수엘라의 반미(反美) 좌파 포퓰리즘 실험도 막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남미 富國의 몰락

베네수엘라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꼽혔다. 195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였던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약 3000억 배럴)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외화를 확보하며 ‘남미의 사우디아라비아’로 통했다. 수도 카라카스는 금융·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교육·보건 인프라와 중산층 비율도 두터워서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차비스모(Chavismo·차베스주의)' 열풍이 국가를 삼키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는 ‘베네수엘라 좌파 대부’ 우고 차베스(1954∼2013) 전 대통령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인 출신으로 199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뒤 옥고를 치른 그는 1999년 대통령직에 오른 뒤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워 석유 산업 국유화 등을 추진했다. 석유로 쌓은 부(富)를 퍼부어 무상 교육·의료, 저가 주택 공급 등 대규모 복지 정책을 펼쳤다. 한때 국제 유가 상승에 힘입어 빈곤율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시장·구조 개혁 없는 분배 중심 정책은 유가 하락과 함께 한계를 드러냈고, 국가 경제는 급속히 취약해졌다.

2007년 우고 차베스(왼쪽)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우루과이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외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버스운전사 출신 노동운동가였던 마두로는 1990년대 차베스의 석방 운동을 주도하면서 그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마두로는 차베스 후광을 내세워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장, 외무장관을 거치는 등 승승장구하며 2012년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차베스의 강경 반미(反美)주의 및 포퓰리즘 정책을 충실히 뒷받침하며 정권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차베스는 암 투병 중이던 2012년 말 마두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마두로를 버스운전사 출신이라고 무시한다면 그가 바로 부르주아”라는 차베스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마두로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듬해인 2013년 차베스 사망 후 치러진 대선에서 마두로는 야권 후보를 1.5%포인트 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마두로, ‘부정선거’로 3선

마두로의 통치는 차베스의 강경 반미 노선과 실험적 포퓰리즘 정책의 연장이었다. 마두로 정권은 위기 국면에서도 개혁 대신 ‘배급제’와 가격 통제 등을 고수했다. 생필품을 구하려고 수㎞씩 늘어선 줄은 베네수엘라 경제 파탄의 상징이 됐다. 연간 6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이 일상화됐고, 국가 경제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정치적으로는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 개정 등을 강행하고, 이에 반대하는 야권 시위는 유혈 사태로 번졌다. 입법·행정·사법을 장악하며 삼권 분립을 형해화해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야권 세력의 우세가 예상됐던 2024년 7월 대선은 ‘깜깜이 개표’ ‘대리 투표’ 등 부정선거 논란 속에 마두로의 승리로 발표됐고, 그는 자신이 3선(選)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도리어 철권 통치를 강화해 야권 인사에 대한 탄압을 이어갔다.

베네수엘라는 ‘망가진 국가’의 대명사가 됐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인근 콜롬비아·칠레 등으로 탈출했다. 1999년 차베스 집권 이후 마두로까지, 27년간 이어진 이 같은 차비스모 통치는 좌파 사회주의 실험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거론돼 왔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를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