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64)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국외로 이송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중남미 정상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전략적 밀착 관계를 구축해온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공개적인 환영 메시지를 내놓은 반면,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와 칠레는 안보·인도주의 위기 등을 우려하며 미군의 일방적 군사 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밀레이는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트럼프가 올린 ‘마두로 체포’ 관련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공유하며 “자유는 전진한다. 자유 만세”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마두로를 “범죄자” “독재자”로 규정해온 밀레이는 이번 사태를 자유 진영의 승리로 평가하며 사실상 미국의 군사 행동을 공개 지지한 것으로 풀이됐다.
밀레이의 이 같은 즉각적인 반응을 두고, 그가 트럼프와 각별한 정치적 유대를 쌓아온 점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 2024년 미국 대선 승리 직후 밀레이를 외국 정상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났고, 아르헨티나 국내 정치에서 밀레이 정부를 전면적으로 지원해 왔다.
특히 지난해 10월 아르헨티나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밀레이 정부가 외환 위기를 겪는 등 선거에서 고전할 것이 예상되자, 트럼프는 아르헨티나와 200억달러(약 28조9000억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는 등 팔을 걷고 나섰다. 백악관 정상회담 당시 참모들 앞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밀레이를 지원하기 위해 여기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내정 간섭’ 논란까지 감수하며 밀레이에게 힘을 실어준 트럼프의 정치적 후원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아르헨티나의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더해 친미 성향으로 분류되는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도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차베스주의 정권의 마약 범죄자들은 모두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베네수엘라 국민이 이제 조국을 되찾을 때”라며 “에콰도르가 여러분의 든든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베네수엘라와 약 2200㎞에 이르는 육로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좌파 게릴라 무장 조직원 출신인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진행하고 국경 지역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는 한편, 대규모 난민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가용 인력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페트로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작전이 지역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며,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방적 무력 사용을 규탄했다.
페트로는 “지역 긴장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콜롬비아는 지역 평화 유지를 위한 입장을 취하며,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대립을 심화시키는 행동을 자제하고 대화와 외교 채널을 우선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평화, 국제법 존중, 생명과 인간 존엄성의 보호가 그 어떠한 형태의 무력 충돌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이날 인스타그램 입장문을 통해 “베네수엘라 영토에 대한 폭격과 대통령 납치는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은 행위”라며 “이러한 행위는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국제 사회 전체에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 사회는 유엔(UN)을 통해 이번 사태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브라질은 이러한 행위를 규탄하며,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 또 다른 좌파 성향 지도자인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이날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를 규탄한다”며 “베네수엘라 위기는 폭력이나 외국의 간섭이 아닌 대화와 다자주의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보리치는 오는 3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뒤이어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할 예정이다. 카스트는 마두로를 “마약 독재자”로 규정하며 “독재 정권 종식을 위한 모든 행동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두로 체포를 둘러싼 중남미 정상들의 상반된 반응은 역내 정치 지형의 균열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평가다. 미국과 보조를 맞춘 친미·우파 국가는 향후 환영의 뜻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지만, 반미·좌파 성향이거나 난민·안보 부담을 떠안게 될 베네수엘라 인접국들은 앞으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외교적 대응에 나설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