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치른 중미 국가 온두라스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우파 성향 나스리 아스푸라(67) 후보가 승리했다. 선거관리 시스템의 기능 마비로 인한 개표 지연과 선거 불복 선언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선거부터 당선자 발표까지 한 달 가까이 소요됐다.
온두라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4일 아스푸라의 당선을 공식 발표했다. 40.3%의 득표율로 중도 성향 살바도르 나스라야(72·39.6%)에게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현 집권 좌파 세력의 릭시 몬카다(60) 후보는 19.2%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아스푸라는 다음 달 27일 4년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현 정부 하에서 불거진 치안 및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 미 행정부와 적극 협력하며 친시장·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선거는 최근 중남미 정치의 흐름인 블루 타이드(우파 연쇄 집권)의 하나이지만 선거 직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혼란의 출발점은 선거관리 시스템의 결함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사전 모의 점검에서 연습 투표지의 36%만 처리되는 등 심각한 결점이 확인됐지만, 선관위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선거를 진행했다. 선거관리 시스템 업체 선정이 늦어진 점도 문제였다.
주요 정당을 대표하는 위원 3명이 선관위를 운영하는데, 집권 여당 측 위원이 정파 간 갈등으로 올해 회의를 몇 차례 보이콧하면서 업체 선정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결국 선거를 약 3개월 남긴 시점에 한 콜롬비아 업체가 지정됐지만, 준비 시간 부족과 기술적 문제로 투표 집계와 개표 등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 여파로 전체 투표지의 약 15%가 손으로 일일이 헤아리는 방식의 재검표 대상이 되면서 당선자 확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집권 좌파의 열세는 뚜렷했지만 우파와 중도 간 초박빙 구도로 선거전이 흘러간 점도 혼선을 키웠다. 특히 나스라야와 집권 여당 측은 개표 과정의 불투명성을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전면 재검표를 요구해 왔다. 여기에 트럼프까지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 ‘외세 개입’ 논란 속에 정치적 혼란이 가중됐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나스라야는 부정선거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재검표를 촉구하고 있다. 집권 여당 소속 루이스 레돈도 국회의장은 선관위의 대선 결과 확정 발표 후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며 “완전한 불법이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선언”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