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칠레 대선 승리가 확실해진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4일 실시된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강경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9)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약 1342만명이 투표한 가운데 카스트는 58.16%의 득표율을 기록해, 현 정부 노동장관을 지낸 급진 좌파 히아네트 하라(41.84%)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에게 연락해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했다”며 “내일 대통령 집무실 회의에 그를 초대했다”고 밝혔다. 칠레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카스트는 내년 3월 취임한다.

수도 산티아고 출신으로 독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스트는 가족사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를 정면돌파했다. 그의 부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당원이었는데, 그는 “나치의 강제 징집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또 골암으로 요절한 형은 인권탄압이 극심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정권 시절 장관을 지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그는 피노체트 정권의 경제 성과를 강조하며 “피노체트가 살아있었다면 나를 뽑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4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이 칠레 국기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변호사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하원에서 4선을 지냈고, 2017년과 2021년에도 대선에 출마했다. 카스트는 보리치 정부 들어 악화된 불법 이민과 범죄 문제, 청년 실업 등 ‘먹고사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불법 이민자 추방을 강조하고, 마약·범죄 조직 등에 점거된 지역을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영토 회복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칠레 북부 쪽 국경 지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경 장벽’을 본뜬 ‘물리적 장벽’을 비롯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경제 정책으로는 규제 완화·법인세 인하, 공공 지출 조정 등을 약속했다.

14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배우자 마리아 피아 아드리아솔라와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사생활에서도 보수적 가치관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배우자 마리아 피아 아드리아솔라와의 사이에 9명의 자녀를 둔 ‘다둥이 아빠’이자 애처가로 유명하다. 현지 언론들은 카스트가 가족과 함께한 모습을 자주 드러내며, 전통적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들을 공략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이철원

이번 칠레 대선은 중남미에서 이민·치안·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좌파 정권이 실권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최근 볼리비아·파나마·아르헨티나·에콰도르·파라과이 등에서도 중도우파 정권이 잇따라 들어섰다. 한때 이 지역을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집권 흐름)’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우파로 교체되는 ‘블루 타이드’가 대세를 이루면서 내년에 대선이 있는 콜롬비아·브라질에서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