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약 2억3700만명) 나이지리아에서 무장 단체들이 학생을 노린 대규모 납치 사건이 잇따르며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뿌리 깊은 종교 갈등, 빈부 격차, 정부 부패와 치안 공백이 누적된 가운데 이 단체들이 정부 기관이나 서방 시설보다는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학교’를 겨냥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로이터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기독교협회(CAN)는 전날 북중부 니제르주(州) 세인트메리스 기숙학교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학생·교사 총 315명(학생 303명, 교사 12명)이 납치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학교 전체 학생 수(629명)의 절반이 끌려간 셈이다. CAN은 “탈출을 시도한 88명까지 다시 붙잡혔다”고 전했다.
아직 이번 사건을 주도한 세력의 정체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국은 최근 ‘몸값’을 요구하며 납치를 벌이는 무장 강도단 소행으로 보고 있다. 과거 가축 절도범에 가까웠던 이들은 최근에는 보안이 느슨한 학교를 주요 표적으로 삼아 학생들을 대거 납치한 뒤 가족·정부에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를 일삼고 있다. 돈을 내지 못할 경우, 남학생은 전투원으로 강제 징집되고 여학생은 성착취에 동원되거나 조직원과 강제 결혼시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에는 나이지리아 북서부 케비주 한 이슬람 기숙학교에 중무장 괴한들이 나타나 학생 최소 25명을 납치했다. 지난해 3월에는 북부 카두나주 쿠리가 마을 공립학교 학생과 교직원 등 최소 280명이 무장세력에 끌려갔다. 2020년 12월엔 북서부 카트시나주의 공립 과학중학교에 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들이닥쳐 10대 중반 남학생 330여 명을 납치했다.
2014년 이슬람 과격 단체 ‘보코하람’이 동북부 치보크에서 여학생 276명을 납치하면서 나이지리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야만적 ‘학교 사냥’ 실태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동 구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유엔 자료를 분석해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22년 18세 미만 학생 1680명 이상이 학교 등에서 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이후 사례까지 더하면 납치 학생 수는 2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주일 사이 학교·교회를 겨냥한 대규모 납치극이 잇따라 발생하자 나이지리아 전국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볼라 티누부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G20(20국) 정상회의 참석까지 취소하며 위기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혼란은 나이지리아의 뿌리 깊은 종교·지역 갈등과 맞물려 있어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이지리아의 종교 지형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양분하고 있다. 무슬림은 주로 북부에, 기독교인은 남부에 거주한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보코하람과 이슬람국가 서아프리카지부(ISWAP)는 15년 넘게 수차례 교회를 공격하거나 서구·기독교식 교육을 하는 학교를 습격해 학생·어린이를 포함한 기독교인을 납치·살해했다. 2002년 결성된 보코하람은 이름부터가 아프리카 하우사어(語)로 ‘서구 교육 금지’를 의미한다.
이들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을 상대로도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어겼다는 이유로 잔혹한 학살과 테러를 자행해 왔다. 최근엔 두 조직 간 세력 다툼도 이어지며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무장 세력의 영향력이 큰 북부 지역에선 최근 수년간 수십 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에 따르면 이 지역 초등학교 진학률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경제적 위기, 빈부 격차가 학생 납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적인 식량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 납치가 일종의 ‘돈 되는 산업’으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나이지리아 환경부 장관 출신인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소셜미디어에 “학교는 (범죄 조직의) 표적이 아닌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곳”이라며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적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가 실존적 위협을 받고 있다. 기독교인 수천 명이 살해당하고 있으며,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들이 학살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며 군사 작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