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8살 아들이 있는데, 한국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에 아이들이 한국을 더욱 좋아하게 됐죠.”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칠레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칠레 비즈니스 포럼’ 연단에 오른 가브리엘 보리치(39) 칠레 대통령은 ‘케데헌’ 이야기를 연설 첫머리에 꺼냈다. “통상·무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에서도 배울 점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며 ‘K컬처’를 언급한 것이다.

보리치 대통령은 경북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최연소 지도자다. APEC 회원국인 멕시코와 페루에서는 대통령 대신 다른 인사가 참석하는 만큼 유일한 중남미권 정상이기도 하다.

보리치 대통령은 “한국으로 오기 전, (비행기에서) 제 옆에 앉아있던 동료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었다”며 “20년 전에 저는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서 한국 영화 산업의 부흥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전 세계에 교육과 혁신을 통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한국에 대해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한국을 이끌어온 문화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2022년 취임한 그는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겪은 두 나라 궤적의 공통점도 짚었다. “한국은 1987년, 칠레는 1988년에 각각 민주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두 나라는 멀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 한국이 칠레와 역사상 처음으로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2004년 발효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굳건한 파트너가 된 두 나라는 신재생에너지·과학기술·디지털 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크로아티아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보리치 대통령은 남극 관문으로 알려진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에서 자랐다. 2014년 연방 하원 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고, 2021년 좌파연합 대선 후보로 나서 ‘젊고 자유로운 정치인’ 이미지를 앞세워 승리했다.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칠레에서 다음 달 열리는 대선을 통해 후임자가 선출되면 그는 ‘마흔 살 전직 대통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