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 페드로 카스티요, 라파엘 코레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알바로 우리베

지난 11일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70) 전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에서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2022년 대선 패배 후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회 폭동을 일으키는 등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마녀사냥’이라면서 “매우 놀랍다”고 했지만, 사실 중남미 대륙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형사처벌 받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에콰도르 등에선 전직 대통령이 수사받는 게 하나의 법칙처럼 굳어지고 있다. 사법 처리된 대통령이 없는 곳은 우루과이 정도로 손에 꼽힌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중남미 주요 국가들은 미국 헌법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 후임 정권의 사법 보복이 반복되면서 ‘중남미 대통령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페루는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도 리마의 바르바디요 교도소에 동시 수감돼 있다가 최근 1명이 풀려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톨레도(79·2001∼2006년 재임), 오얀타 우말라(63·2011∼2016년), 페드로 카스티요(56·2021∼2022년)가 수감돼있으며, 마르틴 비스카라(62·2018~2020년)도 이 교도소에 있다가 지난 4일 풀려났다. 카스티요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주요 혐의는 뇌물 수수다. 카스티요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 시도에 ‘의회 해산’ 카드로 맞서려다 좌절된 뒤,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2000년 이후 페루에서는 최소 7명의 전직 대통령이 부패·인권 유린 등 혐의로 기소·재판을 받았다.

에콰도르는 1996년 이후 집권한 대통령 8명 중 7명이 수사를 받았고, 이 중 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7~2017년 장기 집권한 라파엘 코레아(62)는 2013년 대선 때 정부 사업 계약을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형 집행을 거부하고 배우자 고국인 벨기에로 망명했다. 에콰도르에서 수사를 받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은 알프레도 팔라시오(2005~2007)로, 루시오 구테에레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임시로 대통령직을 수행한 ‘비선출 대통령’이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멕시코, 아르헨티나도 나라마다 최소 5명 이상의 전직 대통령이 뇌물 수수 등 혐의로 범죄 수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72)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사기 등 혐의로 징역 6년이 확정돼 현재 가택 연금 상태다. 전임 대통령(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의 배우자인 그는 집권 시기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재정 파탄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좌파 진영에선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대로 콜롬비아에선 지난달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증인 매수 및 뇌물 공여 혐의로 12년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자, 우파 진영에서 ‘정치 보복’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국가는 우루과이다. 우루과이에선 1985년 민주화 이후 단 한 명의 전직 대통령도 기소·수사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우루과이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긴 민주주의지수에서 지난해 세계 15위에 오르는 등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분류된다. 앙헬 아레야노 우루과이 가톨릭대 교수는 CNN에 “우루과이에선 고위 공직자가 개인 차량을 이용하고, 평소 거주하던 집에서 생활하는 등 공적 자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분석했다. 자리에 따른 특권이 관행화돼 있지 않고, 절제하는 정치 문화가 공직자의 부정부패 가능성을 낮춘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허름한 농가에서 살면서 낡은 자동차를 타며 월급의 90%를 기부해 존경받았다.

중남미에서 반복되는 ‘대통령 잔혹사’는 만연한 부정부패, 대통령제 특유의 권력 집중, 정치 보복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지난해 중남미 지역 평균 ‘부패인식지수’ 점수는 42점(100점 만점)으로, 유럽연합(64점)보다 크게 낮았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남미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 문화’가 강하다”며 “법치보다는 족벌주의 등 ‘인치(人治)‘가 만연해, 의회의 견제 등을 받는 유럽과는 달리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분석했다.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사법 체계를 활용해 정적을 무너뜨리려는 ‘법적 전쟁(lawfare)’도 흔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중남미에서 부정부패 자체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갈등이나 제도적 투명성 강화로 더 많이 포착·처벌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