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에서 대통령의 ‘무제한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범국가적 ‘갱단 소탕 작전’으로 전폭적 지지를 얻으며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나이브 부켈레(44) 대통령이 주도한 것으로, 다수 국민이 이를 묵인하며 지지를 보내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30여 년간 민주 정권에서 범죄 조직이 활개를 쳤던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엘살바도르 여당 ‘누에바 이데아스(새로운 생각)’는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차기 대선을 2027년으로 2년 앞당기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지지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상황인 만큼, 하루빨리 대선을 치러 일단 2033년까지 임기 연장을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부켈레는 최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기념 연설에서 “국내외 언론이 나를 ‘독재자’로 불러도 상관없다”며 “뉴스에서 매일 ‘살인’을 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자평했다.
여당 및 친여 의원들은 별도 공청회 없이 개정안을 발의 후 3시간 만에 찬성 57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에르네스토 카스트로 국회의장은 “이제 국민이 지도자의 재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민주주의는 사망했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다수 국민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처음 집권한 부켈레는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을 벌이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인구 10만명당 살인 범죄 희생자 수는 2015년 세계 최고 수준인 106.3명이었지만, 지난해엔 중남미 최저 수준(1.9명)으로 급감했다. 고질적인 치안 문제가 해결되자 국가 신인도 상승, 관광업 활성화 등 경제 성과로도 이어졌다. 현재 부켈레에 대한 지지율은 80%에 육박한다.
이런 인기의 배경에는 야당에 대한 국민의 환멸이 있다. 2009년부터 10년간 좌파 정당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이 집권했을 당시 엘살바도르는 범죄의 소굴이었다. 정권은 범죄자를 잡아들이기는커녕, 이들과 유착돼 다양한 사법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결과 FMLN의 현재 의석 수는 하나도 없다. 야당이 힘을 잃으면서 인권 활동가와 언론인 100여 명도 해외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엘살바도르는 1992년 내전 종식과 함께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간 갱단이 지배했던 경험 때문에 다수 국민이 민주주의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