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구호 물자를 실은 유엔(UN·국제연합) 트럭으로 몰려든 군중에게 이스라엘군이 총을 쏴 80여 명이 숨졌다. 군인도 아닌 민간인들이 배식을 받으러 갔다가 죽는 사건이 끊이지 않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주의’를 내건 식량 배급소가 어쩌다가 죽음의 배급소가 되었나.

지난 2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주민들이 약탈당한 구호품 트럭에 실려있던 밀가루 자루를 가져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 같은 비극은 지난 5월 이스라엘·미국 정부가 후원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배급을 맡기 시작한 뒤부터 발생하고 있다. 기존 구호품 보급은 UN이 주도한 400여개 배급소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UN과 유착해 물자를 빼돌리고 있다며 구호품 배급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UN의 배급소는 대부분 폐쇄됐고, GHF는 4개의 ‘메가 허브’ 배급소를 운영하고 있다. 배급소 주변에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이스라엘군이 배치됐다.

하지만 배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수천 명의 가자 주민들이 한 곳의 배급소에서 제한된 식량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움직임을 폭동으로 오인해 발포할 여지도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가자지구 현장을 찾아 이 같은 현실을 보도했다. 지난 15일 한 GHF 배급소 앞에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철조망 주변으로 몰렸다. 배급을 위해 문이 열리는 순간 군중이 쏟아져 들어오며 통제가 사실상 무너졌고, 일부 주민들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마구 식량 상자를 가져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었고,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약 15분 만에 준비된 물품은 모두 바닥났다. 한 예비역 이스라엘군은 WSJ에 “(주민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고 우리 부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발포하는 등)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21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식량을 구하려다 사망한 사람은 105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766명이 GHF 배급소 근처에서 숨졌고, 288명은 근처 UN 및 기타 인도주의 단체의 지원 호송 차량 인근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스라엘군은 숫자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은 22일 새로운 구호품 지원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를 중동에 파견했다. 태미 브루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새로운 휴전과 함께 구호 물자가 통과할 수 있는 인도적 통로가 마련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내 구호품 분배 통제권 문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