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전투요원과 민간인이 혼재한 건물 옥상에선 저격 총알이 날아들고, 주택과 도로 잔해 곳곳에는 부비트랩이 설치되고, 드론에선 장갑(裝甲)을 뚫는 총탄이 쏟아지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에선 로켓이 발사되고…
팔레스타인 무장테러집단인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 지구(Gaza Strip)에 대한 이스라엘방위군(IDF)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1400여 명이 숨진 이래, “하마스 박멸”을 외치며 대규모 기갑 부대를 가자 북쪽으로 집결했다.
그러나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이 지상전이 수많은 전사자와 민간인 피해를 초래하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도시 전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70만 명이 사는 가자 시티를 포함해 이스라엘이 초토화하려고 하는 인구 230만 명의 가자 북부 지역은 매우 도시화한 지역이며, 하마스 요원들은 모두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도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데 매우 익숙해 가자는 매우 복잡한 전장(戰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 전쟁이 수 개월의 장기전으로 변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정당한 반격’에 나섰던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비판이라는 강력한 역풍(逆風)을 맞게 된다. 이미 지난 보름간 이스라엘의 공습만으로도 가자 지구에선 5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24일 하마스 보건부는 주장했다.
이 탓에, 현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등은 이스라엘 정부에 지상군 투입을 미루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작전 목표를 보다 구체화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또 그 새 인질 구출 협상의 시간도 벌고, 수 주째 외부 지원이 단절된 전체 230만 가자 인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물품 지원도 확대하려는 것이다.
◇ 가자의 하마스 땅굴은 서울 지하철 총길이보다 길어
특히 이스라엘군의 조기 승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하마스가 지난 20여 년간 지하 수십 m에 설치한, ‘가자 지하철(Gaza Metro)’이라고 불리는 땅굴(tunnel)이다.
깊이 50~60m에 설치된 이 땅굴의 높이는 1.5~1.8m, 너비는 약 80㎝로, 가자 지구 전역에 설치돼 있다. 지상에서 미리 제조된 콘크리트벽과 천장으로 구축됐으며, 웬만한 폭탄은 충분히 견뎌낸다.
건물 내부를 비롯해 다양한 통로로 진입할 수 있는 이 땅굴의 길이는 500~800㎞로 추정된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지역에, 서울 지하철 총길이(343㎞)보다 훨씬 긴 땅굴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이 2014년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전에 발견한 아치형 지붕의 콘크리트 땅굴은 지하 50m로 연결됐고, 땅굴 높이는 1.5m였다. 지하에서 이스라엘로 침투할 수 있게, 3㎞ 길이의 땅굴이 국경 펜스 밑을 통과했다. 통신선과 전선, 무기 수송용 철로도 설치돼 있었다.
과거 이집트는 하마스가 외부에서 무기를 밀반입하는 이집트ㆍ가자 국경 지대에 뚫은 땅굴들을 무력화(無力化)하려고 물을 땅굴에 범람시키고 최루가스 등을 주입했다. 이스라엘은 발견되는 대로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파괴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지하에서만 수 일을 버틸 수 있는 무기와 식량, 각종 장비를 땅굴 곳곳에 저장해 놓았다.
미 싱크탱크인 랜드(RAND)의 브라이언 마이클 젠킨스 선임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땅굴 전투, 시가 전투에서는 현대적인 군 장비의 많은 이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 하마스 전투요원은 3만~4만 명
2016년 이라크군과 미군이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에서 소탕 작전을 벌였던 이슬람 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의 병력은 3000~5000명 선이었다. 이 작전에서만 이라크 민간인 1만 명이 희생됐다.
하마스의 무장 병력인 알 카삼 여단은 최대 4만 명에 달한다. 또 가자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들을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다. 이 숫자에는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와 같이, 가자를 근거지로 한 다른 무장테러 집단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압도적 화력을 투입하겠다는 것이지만, 하마스 지도부는 최근 수년 간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에 대비했다.
땅굴을 통해 공격 포인트를 계속 바꿀 수 있고, 이스라엘군 기갑부대가 들어서게 될 도로와 건물 곳곳에는 수많은 부비트랩과 폭발물을 설치했다. 이슬람 사원과 학교는 로켓 발사대와 무기고로도 쓰인다.
◇막대한 민간인 피해 낳았던 이라크ㆍ우크라이나의 도시 전투
미 육군의 예비역 대령 리암 콜린스는 WSJ에 “도시 지형은 다른 어떤 지형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군 교리는 이를 피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과 도시의 지형적 특성, 가가호호 전투 등은 방어하는 측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대적 첨단 무기로 진입해도 전투가 시가전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우세한 군사적 기술이 상당 부분 훼손된다.
예를 들어, 미군은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이슬람 수니파 반군을 몰아내기까지 적잖은 희생을 치렀다. 4월에 1차 진압에 나섰다가 미 해병대원 40명이 전사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주민에게 대피할 기간을 줬지만, 최대 9만 명이 떠날 수 없었고, 팔루자의 반군은 이들을 ‘인간 방패’로 썼다.
어디서 총탄이 날아오고 부비트랩이 터질지 모르는 시가 전투의 급박한 상황에서, 적과 민간인을 정확히 식별하는 판단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2016년 이라크 모술의 IS 소탕작전에서는 민간인 희생자 1만 명외에도, 이라크군 10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죽거나(8200명 전사) 다쳤다. 또 1만3000동(棟)의 건물ㆍ주택이 완전히 파괴됐다.
러시아군은 5~8배의 병력을 동원하고도, 우크라이나 남부의 철강 도시 마리우풀을 장악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우크라이나군과 민병대는 이곳의 제철소와 지하시설을 근거지로 저항했고, 도시 건물의 80~90%가 파괴됐다. 전쟁 전에 43만 명이 살던 마리우풀에선 2만2000여 명이 죽었다.
미 육군의 전략가인 토머스 아널드 중령은 뉴욕타임스에 “도시들은 악마들의 놀이터”라며 “전투가 모든 면에서 한없이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모의(模擬) 가자’ 도시 만들고 훈련
이스라엘군도 수년 전부터 가자 국경에서 20㎞ 떨어진 군 기지에, 가자 시티를 모방한 19㎢ 면적의 ‘발라디아(아랍어로 ‘타운’이라는 뜻)’라는 모의 도시를 만들고 시가 전투 훈련을 해왔다. 이곳엔 부비트랩, 폭발물이 설치된 이슬람 사원과 학교, 좁은 골목, 낡은 주택과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현대식 정찰 드론이 하늘에서 이스라엘군 전차들에게 위협을 알리고, 이스라엘군의 최신형 메르카바 5 전차는 인공지능으로 주변 위협을 계속 훑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2006년 선거에서 가자를 장악한 이래, 지금까지 네 차례 지상군을 투입해 하마스와 싸웠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규모는 과거 이스라엘군의 가자 전쟁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때는 하마스가 훨씬 약했고, 이스라엘군은 핵심적인 위협 요소를 제거한 뒤에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2014년 7월에도 땅굴 궤멸을 목적으로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스라엘 군인 66명이 전사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1460명 이상이 숨졌다. 하마스의 땅굴 30여 곳을 파괴했다. 그때도 이스라엘 내부에선 가자를 장기간 점령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막대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 예측과 재정적 부담 탓에 50일만에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이번 지상전 투입을 앞두고, 네타냐후 총리 내각은 ‘국론 분열적’ 지도력과 건국 이래 최대 피해를 초래한 하마스의 이번 기습을 예측하지 못한 무능(無能)을 비판 받는다.
◇”하마스 없어지면, 하마스 2.0이 들어설 것”
또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는 순간, 이란의 조종을 받는 레바논의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 시리아가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다.
가자 전쟁이 중동 지역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전쟁의 장기화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일부 동일한 재래식 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미국에게도 심각한 압박 요인이 된다.
군사전략가들은 또 이스라엘군이 설령 하마스를 궤멸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또 포스트(post)-하마스 계획이 없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은 9ㆍ11테러의 주범 알 카에다를 제거했지만, 이후 그 자리엔 중동과 서방, 아프리카를 공포로 몰아넣은 IS(이슬람국가)가 들어섰다. 하마스와 그 지도부를 파괴해도, ‘하마스 2.0’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