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3일 제다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는 사우디 대표팀을 접견하고 있다. 빈 살만은 25일 리야드에서 개막한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 역대 최다 각국 대표단을 끌어들이며 미래 신산업에 막대한 오일머니 투자를 약속, '빈 살만 사우디'의 경제 정치적 위력을 과시했다. /사우디 왕실 제공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최하는 연례 글로벌 경제포럼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25일(현지 시각) 수도 리야드에서 사흘 일정으로 개막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A New Global Order)’를 주제로, 미국 바이든 정부와 사우디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월가 거물 등 미 기업 최고경영자(CEO)만 400여 명 몰려 사우디의 시장 파워를 또 한 번 과시했다.

지난 2017년 시작된 FII는 빈 살만 왕세자가 6200억달러(약 883조원) 규모 국부펀드 돈 보따리를 들고 인공지능(AI)과 가상화폐, 관광산업과 재생에너지 등 유망 분야 투자 협력을 맺는 자리다. 각국 정치·경제 주요 인사가 모이는 반세기 전통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비견돼 ‘사막의 다보스’로 불린다.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서방 각국이 보이콧하거나 참석을 쉬쉬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모든 대륙에서 6000여 명의 정부·기업 대표단이 몰리고, 연사만 500여 명에 달하는 등 역대 최대 성황을 이뤘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사우디 리야드 리츠칼튼호텔에서 25일(현지시각) 사흘 일정으로 개막한 미래투자이니셔티브 첫날 모습. 각국 정부 대표단과 주요 경제인 등 6000여명이 몰려 '사막의 다보스'라는 별명을 재확인했다. /로이터 통신

특히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전설적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 등이 일제히 참석했다. 사우디 국부펀드의 투자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장관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현직 미 정부 인사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관도 FII와 관련한 언급을 피했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가운데)이 25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미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해 "우리가 더 어른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행사 직전 바이든 정부는 자국 기업을 향해 “거래하는 국가의 평판과 법적 문제를 고려하라”(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며 불참을 유도했다. 하지만 JP모건의 다이먼 CEO는 이날 사우디의 인권 문제, 바이든 정부와 관계 악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양국은 75년 된 동맹이다. 모든 것에 동의하는, 문제없는 동맹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8년 카슈끄지 살해 사건 직전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월가 황제'로 불리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과 면담하는 모습. 다이먼은 2022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 포럼에 직접 참석했다. /주미 사우디 대사관 트위터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당시 미 정부는 사우디와 석유 증산을 위한 비밀 합의를 맺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우디가 약속과 달리 감산을 단행해 뒤통수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NYT는 중동 전문가와 정부 관리 등을 인용, 이 과정에서 압둘아지즈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의 반대 의견과 러시아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