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 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이 발생을 처음 보고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오랜 전염병 대응 관련 연구로 축적된 기반 하에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는 남아공이 198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같은 대형 전염병에 대응하면서 쌓은 연구 인력·기술과 보건 행정 인프라, 국제기구와 공조 등의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비록, 남아공이 오미크론의 국내외 확산을 막지는 못했지만 변이 바이러스 연구 분야에선 선두 주자라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남아공의 콰줄루나탈 연구혁신·시퀀싱플랫폼(KRISP) 국장을 맡고 있는 툴리오 드 올리베이라 교수, 리처드 레셀스 교수 등은 세계적인 ‘바이러스 사냥꾼’이다. 이들은 이번 오미크론뿐 아니라 지난해 남아공에서 나온 베타 변이 등 신종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분석해 세계 학계와 공유해왔다. KRISP는 지난해 남아공 내 첫 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로나 게놈 감시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남아공의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 조직·인력은 에이즈 바이러스 연구에서 대부분 파생됐다고 한다.
남아공은 세계 에이즈 환자 3분의 2가 몰려 있는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 중에서도 최대의 에이즈 환자 보유국이다. 현재 인구 6000만명 중 13.7%인 800만명이 에이즈 감염자로 추산된다. 그러나 도시와 시골 간 접근성이나 정보력이 큰 차이가 나고 재정이 부족해 520만명만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나라에서 유독 코로나 변이 발생이 잦은 것도 바로 에이즈 때문이다. “면역력이 극도로 저하된 에이즈 환자들의 몸속에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면서 항체를 피하는 쪽으로 진화해 변이를 일으킨다”(프랑수아 발루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남아공에선 36세 에이즈 환자의 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7개월이나 잔류한 기록이 있다.
남아공은 지역별로 기존 에이즈 환자 관리 노하우를 가진 풀뿌리 정보·행정망을 활용해 코로나 등 감염병 확산 조사를 신속하게 실시해왔다. 등록된 에이즈 환자가 보건소에서 타가던 약을 가져가지 않으면 직원이 집까지 찾아가 상태를 점검하는 경험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선진국 정부와 백신 제약사들이 개도국에 백신을 저가에 공급하게 된 것도 남아공의 역할이 컸다. 남아공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2000년대 에이즈 치료제 특허를 풀어 저렴한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글로벌 캠페인을 했던 일을 국제적으로 상기시켰다.
남아공은 오미크론 변이의 첫 발생·확산 사실은 물론, 자체 연구진이 파악한 감염자의 상태·경로 등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세계에 알려왔다는 평가다. 남아공 의학연구위원회는 5일에도 “지난 2일 기준 가우텡주 츠와네 지역 스티브 비코 종합병원 코로나 병동 입원 환자 42명 중 29명(70%)은 산소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츠와네는 오미크론 확산의 진앙으로 지목된 곳인데, 이곳의 환자들이 대개 경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5일 남아공의 코로나 일일 신규 확진자는 1만1125명이다.
미국·유럽 보건 당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와 학계는 남아공 당국과 의료진의 이 같은 실시간 정보를 상당히 신뢰하는 분위기다. 앞서 남아공은 오미크론 변이 발생이 확인되자마자 지난달 24일 WHO에 자진해서 신속하게 보고, 각국이 남아공발 코로나 변이 유입을 막는 데 기여했다. 코로나가 처음 중국 우한에서 확산된 뒤 중국 당국의 은폐·늑장 보고 논란이 있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제사회에선 오미크론 사태에서 남아공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일 “남아공이 중요한 보건 과학 정보를 발견해 세계와 즉각 공유했다는 이유로 (봉쇄) 징벌을 받아선 안 된다”며 “바이러스엔 국경이 없는데, 새로운 변이가 출현했다는 이유로 세계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아프리카를 폐쇄하는 것은 부당한 낙인 찍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