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샹티이의 덜레스 엑스포 센터 앞마당엔 이동식 간이 화장실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다. 미 국방부는 1만㎡(약 3000평) 규모의 이곳 전시장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 수백명을 임시 수용하기로 했다. 출입을 통제하는 미군들 뒤로 보이는 건물에서 검은 히잡을 쓴 노년의 여성이 네댓살쯤 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아이는 엉덩이 아래 잔뜩 오물을 묻힌 채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다. 샤워장 없는 수용 시설의 간이 화장실에서 할머니는 손주의 뒤처리를 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난민을 실어나르는 대형 전세 버스 여러 대가 이곳과 덜레스 국제공항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틀 전 카불을 탈출해 미국에 왔다는 라마툴라 망갈(32)씨는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불 공항은 아비규환이었다. 수천명이 화장실도 물도 없는 곳에서 미군 수송기만을 기다렸다. 공항 영내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탈레반의 잔인함을 기억하는 모두가 아프간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 네 명을 데리고 탈출했다는 젊은 아프간 부부는 “이제는 아이들이 안전하다.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후세인’이라는 남성은 “가족을 방문하러 아프간에 간 아내를 데리고 나오려고 카불에 갔었다”고 했다. 그는 “카불 공항 주변에서는 수시로 총성이 울렸다. 5번 시도한 끝에 겨우 공항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나는 미국 여권이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아프간에 남았다”고 했다.
난민 시설 부근에는 혹시 고향의 가족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온 아프간계 미국인들도 있었다.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 ‘에이제이’라고만 밝힌 30대 남성은 “나는 미군이 머물던 12년 전에 미국에 왔지만 아직 카불에 남동생과 여동생 둘이 남아있다. 여동생들은 미국 국제개발처에서 일하고 여성 인권운동을 했기 때문에 탈레반의 표적이 됐을 텐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난민들의 애절한 사연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에 협력한 아프간인과 그 가족이 “5만~6만5000명 사이”라며 “모든 사람을 데려 나오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 열흘간 약 5725명의 영국인과 아프가니스탄인을 군용기로 대피시킨 영국에서도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최대 2만명의 아프간인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난민 출신으로 런던 해로구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이마나 아사드(30)씨는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아프간을 방문했다가 지난 17일 영국 왕립공군 군용기를 타고 탈출했다. 그는 BBC에 “탈레반이 카불에 진출한 이후 집집이 수색을 벌여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친구인 다와 칸 메나팔(아프가니스탄 언론정보센터 소장)이 암살당하자, 바로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가 차단돼 걸어서 공항으로 향했는데 내 뒤로 수백명이 공항을 향해 달리는 것을 봤다. 달리고 있는 내게 한 상점 주인이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탈레반은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외쳤다.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 “시민권이 생사 여부를 가르고 있다. 탈출한 나와 그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영국 여권을 갖고 있느냐였다”면서 “미국이 아프간을 탈레반에 팔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反)이슬람주의 운동을 벌인 경력이 있는 미혼 여성 라미나 쿼르반(22)씨는 “탈레반이 집을 일일이 방문해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웃 중 한 명이 내가 그 마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일간 인디펜던트에 전했다. 아프간에 남아 있으면 탈레반 군인 중 한 명과 강제 결혼해야 한다는 점도 탈출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카불에 있는 집부터 공항에 도착하는 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는 쿼르반씨는 “친구들 대부분이 아직 아프간에 있다.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아프간 인접국에도 난민들이 밀려들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현재 최소 145만명, 이란에는 약 78만명의 아프간 난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