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내전을 일으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아비 아머드(45) 에티오피아 총리. 그가 21일(현지 시각) 시작된 총선을 통해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AP통신 등은 에티오피아의 여당 ‘번영당’이 전체 선거구 547곳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해 아비 총리가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총선은 내전과 코로나 사태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실시된 것이다. 치안 불안 등으로 선거구 100여 곳에서는 아직 선거가 열리지 않았지만, 여당에 대적할 만한 야당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비 총리는 이웃 국가인 에리트레아와의 분쟁을 20년 만에 끝낸 공을 인정받아 2019년 100번째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은 ‘티그레이 내전’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두 얼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보 장교로 활동했던 아비는 2010년 총선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2018년 4월 총리에 당선되자 야당 소속 정치범을 석방하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도 허용했다. 20명 장관 중 10명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파격 행보로 젊은 층의 환호를 받았다. 이후 에리트레아와 국경선을 확정하고, 20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낸 공로로 총리 취임 1년 만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2019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연단에서 “평화를 만드는 기술은 마음과 신념, 태도를 바꾸는 끊임없는 시너지 작용”이라며 “국민의 마음에 사랑, 용서, 화해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1991년 15세의 나이로 군 복무를 시작한 그는 과거 자신이 참여한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을 회고하며 “최전방 전투에서 전쟁의 추악함을 직접 목격했다. 전쟁은 지옥의 전형”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비는 노벨평화상 수상 1년 만에 돌변했다. 지난해 11월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 지역에 군을 투입해 수천명이 사망하는 내전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엔 에티오피아의 뿌리 깊은 지역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1991년 에티오피아가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연립정부를 꾸려온 4개 정당 중 3곳이 2018년 아비 총리 취임 이후 번영당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러자 티그레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는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이 아비 정권에 맞섰다. 티그레이 지역의 인구는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TPLF는 약 25만명의 무장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총선이 미뤄지자 TPLF는 지난해 9월 이 지역에서 자체 선거를 실시하기도 했다. 아비가 ‘내란 진압’을 명분으로 군을 투입, 끝내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수천명이 티그레이 내전으로 인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국제사회 우려 지속, 노벨위원회도 ‘실수했다’
내전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제사회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1일(현지 시각) 에티오피아 티그레이 내전을 언급하면서 “초법적 처형,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 등 극도의 폭력이 만연하고 있다”면서 “군대 배치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아비는 유엔의 휴전 촉구에 “주권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맞서고 있다.
내전으로 인해 수십만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유엔은 지난 10일 “티그레이 지방의 기근이 극심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약 35만3000명이 식량 안보 단계 분류에서 최고 수위인 ‘재앙’(IPC5) 단계에 처해있다. 재앙 단계는 식량 부족으로 죽음의 위험에 이른 상태를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비는 지난 21일 에티오피아 베샤샤 지역의 투표소에서 BBC 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티그레이에 기근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결정이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샨 타루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22일 아비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것과 관련해 “노벨위원회 관계자들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비 총리는 198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에서 기근으로 약 100만명이 사망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노벨상의 영광은 퇴색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