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가라테 국가대표 출신 스타니슬라브 호루나가 5일 일본 도쿄의 한 가라테 도장에서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딴 동메달을 손에 들고 수강생들에게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조국을 위해 올림픽 메달을 경매에 부쳤던 그는 4년 만에 일본인 낙찰자에게서 메달을 돌려받고 감격했다. /요미우리신문

5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가이시(皆思) 도장’에서 특별한 가라테 수업이 열렸다. 어린이 수강생 30여 명 앞에 일일 강사로 나선 이는 우크라이나 가라테 국가대표를 지낸 스타니슬라브 호루나(37)였다. 가라테 도복을 입고서 손짓 발짓을 동원해 아이들에게 가라테 기본 자세와 기술을 알려주는 그의 목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구릿빛 메달이 걸려 있었다.

이날 호루나의 수업은 전일본가라테연맹이 주최한 ‘도쿄 올림픽 메달 반환식’에 맞춰 열렸다. 호루나는 2021년 8월 가라테 종주국 일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구미테(組手·대련) 75㎏ 이하급 동메달을 따냈다. 가라테를 시작한 13세 때부터 꿈에 그려 온 순간이었다.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뒤 1년도 되지 않아 호루나는 자신의 땀과 눈물이 담긴 메달을 팔아버리기로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자신의 조국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게 됐기 때문이다. 호루나는 올림픽 동메달을 미국 이베이가 진행한 자선 경매에 올렸고, 그해 4월 2만500달러(약 3100만원)에 낙찰됐다. 호루나는 이 돈을 우크라이나군에 전액 기부했고, 얼마 뒤 입대했다. 가라테 도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도장이 아닌 전장에서 러시아군과 맞섰다. 그는 “지금 중요한 건 개인이 아닌 조국”이라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 올림픽 메달이 다시 호루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본 데일리스포츠에 따르면, 4년 전 경매에서 호루나의 메달을 사들인 사람은 일본인으로, 이날 호루나가 방문한 가이시 도장 수강생의 학부모였다. 이 학부모는 당시 호루나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소중한 올림픽 메달을 경매에 부쳤다는 소식을 접한 뒤 “가라테를 배우는 아이의 부모로서 모른 척할 수 없다”며 “내가 직접 낙찰받아 주인에게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애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호루나에게 메달을 반환할 계획이었지만, 4년 넘도록 전쟁이 길어지자 더 늦기 전에 돌려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이 학부모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메달에는 ‘평화를 지키는 무술’이라는 가라테의 철학이 담겨 있다”며 “호루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4년 만에 메달을 되찾은 호루나는 “내겐 올림픽 메달 이상의 가치”라며 “이 감사함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호루나는 2024년 현역 선수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격전지인 고향 르비우주(州)에서 주의원이자 가라테 교실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쟁 발발 50개월이 지났지만, 르비우 역사 지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는 여전히 러시아군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호루나는 이날 가이시 도장에서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한 아이가 ‘전쟁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호루나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잘 모르겠다”며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 “전쟁에서 떠나보낸 친구의 얼굴이 아직 잊히지 않아요. 그날(종전일)을 매일 손꼽아 기다리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상상이 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