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일 동맹의 새로운 황금기를 향하여’라는 문서에 서명한 뒤 취재진에게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이 작년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일본의 5500억달러(약 8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첫 프로젝트 3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중국과 대립 중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권은 신속한 대미 투자 집행으로 미국의 신뢰를 얻어 미·일 동맹을 견고하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대미 투자를 약속한 주요국 중 일본이 가장 먼저 ‘보따리’를 풀면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과 조지아주의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시설 건설, 텍사스주의 석유·가스 수출 항만 정비 등 총 360억달러(약 52조원) 규모의 3개 프로젝트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각) 트루스소셜에 “일본과의 거대한 무역 합의가 막 출범했다. 전략적 영역의 세 가지 엄청난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돼 기쁘다”고 썼다. 이날 국회에서 총리로 재지명된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X에 “이것이 바로 일·미 상호 이익의 촉진, 경제 안보 확보, 경제 성장 촉진이라는 ‘전략적 투자 이니셔티브’의 의의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3개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 산업 기반을 재활성화하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 및 경제 안보를 전례 없이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하이오 가스 발전소는 역사상 최대 규모(9.2기가와트)가 될 것이며, 텍사스 등 아메리카만(멕시코만) 인근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은 수출 증대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이끌 것이다. (조지아주의 핵심 광물 시설은) 외국 공급원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다시 건설하고 있고, 다시 생산하고 있으며, 다시 이기고 있다”고도 했다.

◇다카이치 방미 때 2차 투자 발표… 한국 실무협상단도 어제 미국행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 발전 프로젝트는 약 333억달러(약 48조원) 규모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설계·건설하고 히타치제작소 등이 필요한 설비를 납품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GE베르노바 등도 참여 후보로 꼽힌다. 급성장 중인 인공지능(AI)용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만큼, 손실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약 6억달러 규모인 공업용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프로젝트는 경제 안보에 직결되는 안건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인공 다이아몬드를 생산해 미국과 일본에 공급할 계획이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반도체는 물론이고 자동차·항공기 등 주요 제조 분야에서 소량이지만 꼭 필요한 소재다. 아사히다이아몬드공업, 노리타케 등 일본 기업들과 함께 다이아 유통 세계 최대 기업인 드비어스그룹이 참여한다.

에너지 수출을 추진하는 트럼프 정권에서 꼭 필요한 미국산 원유 수출 인프라 구축도 1차 투자처로 확정됐다. 약 21억달러 규모로, 대형 탱커가 접안 가능한 원유 적출항을 정비하는 프로젝트다. 미측은 연간 200억~300억달러의 미국 원유 수출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맥스에너지가 항만 건설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쇼센미쓰이, 일본제철, JFE스틸, 미쓰이해양개발 등 일본 기업들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미·일 정부는 조만간 프로젝트별로 특수목적사업체(SPV)를 설립하며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자금을 입금할 계획이다. 일본 3대 은행도 일본무역보험(NEXI)의 보증을 받아, 프로젝트 참여 기업에 자금을 대출한다. 미국은 부지 등을 현물 출자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자본은 일본이 제공하고, 인프라는 미국에 건설된다”며 “일본은 수익을 얻고, 미국은 전략적 자산, 산업 역량 확대, 에너지 주도권 강화를 얻는 구조로 설계됐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작년 10월 말 총리 취임 직후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장관)에게 대미 투자를 최우선 과제로 지시했다. 트럼프의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다른 나라보다 위험이 적은 투자처를 선점하려는 의도였다. 최근 “트럼프가 ‘일본이 일부러 투자 약속을 지연한다’고 화를 냈다”는 보도가 나오자 다카이치 정권은 곧바로 아카자와를 워싱턴 DC에 급파해, 3개 프로젝트에 모두 합의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차 프로젝트’도 서두르고 있다. 이미 10조엔(약 94조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만나는 다음 달 19일에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대미 투자가 공식화됨에 따라 한국 정부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장 먼저 확정된 일본의 제1호 안건은 EU와 한국의 모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6일 한국 국회의 입법 지연을 문제 삼으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양국 무역 합의 이전 수준인 25%로 올리겠다고 했다. 이에 국회는 지난 9일 대미 투자 특별법 처리를 논의하는 특위 구성에 합의하는 등 입법 절차에 뒤늦게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실무 협상단을 구성해 18일 미국에 급파했다. 이들은 미국 상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대미 투자 프로젝트 후보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대비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프로젝트를 원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전력망·발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