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하원) 총선 당선자 90% 이상이 올해 공포 80주년을 맞은 평화헌법의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치권에선 올해 국회에서 자민당 주도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고, 이르면 2028년 하반기에 개헌안 발의와 국민투표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2~3년을 내다본 ‘개헌 열차’를 출발시킨다는 것이다
◇급증한 개헌 찬성
12일 아사히신문은 도쿄대와 공동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총선 당선자의 93%가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고 보도했다. 2년전 같은 조사에서 찬성은 67%였는데, 크게 높아진 것이다. 개헌 반대는 3%에 불과했다.
자민당 당선자의 99%를 비롯해 일본유신회(100%), 국민민주당(96%), 참정당(93%), 팀미라이(73%), 중도개혁연합(58%) 등 거의 모든 정당에서 개헌 찬성이 우세했다. 이번 조사에는 전체 당선자 465명 가운데 430명이 응했다.
중의원 당선자의 개헌 찬반 조사를 실시한 2003년 이후 찬성 응답이 9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의원의 개헌 찬성파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2012년에 89%를 기록했지만 이후 2014년 84%, 2017년 82%, 2021년 76%, 2024년 67%로 계속 하락했었다.
자민당은 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이 차지한 헌법심사회장 자리를 되찾아와, 그동안 정체됐던 개헌 논의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9일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얘기하는 게 헌법”이라며 “조금이라도 빠르게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이뤄질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각오”라고 말했다. 선거 유세 때도 다카이치는 “헌법에 왜 자위대를 적으면 안되는가”라고 했다.
◇아베도 못 이룬 개헌의 꿈
자민당은 헌법에 자위대의 존립 근거 조항을 추가하자는 입장이다.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을 명기한 헌법 9조에 따르면 실질적인 무력 행사 조직인 자위대는 위헌이란 해석이 나오는데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자민당은 헌법 9조의 조항 삭제를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가 이를 주장하는만큼,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일본은 ‘전쟁 가능한 국가’에 한발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민당이 당장 개헌을 강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본은 헌법을 제정한 이후 한번도 고치지 못했을 정도로 개헌 절차가 까다롭다. 중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개헌발의선을 넘겼지만, 참의원에선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와 합쳐도 3분의 2는커녕 과반에도 못 미친다. 작년 7월 참의원 당선자 조사에선 개헌 찬성 응답이 63%였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염원했던 아베 전 총리도 높은 개헌 문턱에 막혀 ‘헌법 재해석’이란 우회로를 썼다. 개헌 대신 헌법 9조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을 바꾼 것이다. 다만 이는 법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어서 다른 정권이 언제든 다시 뒤집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아베 계승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가 개헌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개헌 발의 여부는 2028년 7월의 참의원 선거 결과가 좌우할 전망이다. 다카이치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압도적 지지를 참의원 선거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는 일본 역사상 개헌을 이룬 최초의 총리로 기록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