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면역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암은 더는 무서운 병이 아니라 보통의 병이 될 겁니다.”
작년 10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석학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를 지난 22일 화상 연결해 인터뷰했다. 그는 1995년 세계 최초로 T세포(면역세포)를 통제하는 ‘제어성T세포’의 존재를 입증한 의학자다. 아무도 관심도 갖지 않고 믿지도 않았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30년을 매진해 결실을 맺었다. 그는 “지금은 전세계에서 제어성T세포를 활용한 임상·연구가 200건 이상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20년쯤 뒤면 암이 감기와 같은 질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체에 병균이 침입하면, 백혈구 속 T세포가 공격을 시작한다. 하지만 T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하면 멀쩡한 세포까지 공격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병이 관절염이나 제1형 당뇨, 루푸스와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이다.
‘제어성 T세포’는 이런 오인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또 제어성 T세포를 교묘히 활용해 자신을 보호한다. 자기 주변에 제어성 T세포를 잔뜩 모아 놓고 면역의 감시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사카구치 교수의 가설이다. 암세포 주변에 결집된 제어성 T세포를 줄이고, 정상 조직에선 그대로 유지하면 암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제어성 T세포를 잘 조절하면 모든 병의 치료에 쓰일 수 있는 것인가.
“맞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억제 세포를 찾는 연구가 활발했지만 실패했다. 이후엔 외면 받았다. 그런게 없다고 본 것이다. 20대 후반에 흉선을 제거한 쥐의 몸에 염증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자가면역병이 생긴 것이다. 그곳에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는 무언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의 병도 공통된 메커니즘이란 가설을 세웠다.”(※흉선에 억제 세포가 있었고, 이게 사라지자 면역세포들이 자기 자신을 공격했다는 가설.)
-암 정복도 가능한가.
“암세포 주변의 제어성T세포를 표적해 줄이면 된다. 무엇보다 암 사망의 90%는 전이 탓이다. 암 초기 단계에서 제어성T세포를 조절해 면역 반응을 높이면 전이를 막을 수 있다. 장기 이식 거부를 억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길면 20년 뒤일지 모르지만, 면역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를 처음 담은 1995년 논문은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다.
“저명한 저널에 게재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실리면 연구비를 받기 쉬워진다. 논문은 결국 미국면역학회가 내는 전문지에 실었다. 면역학이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래도 크게 비관하진 않았다. 정말 중요하다면 언젠가 인정받는다는 게 자연과학의 좋은 점이다.”
-연구 자금이 모자라, 아내와 둘이서 실험용 쥐를 키웠다고 하던데.
“조교를 두지도 못해 아내가 사실상 연구 조수 역할을 도맡았다.(※아내 사카구치 노리코는 피부과 의사다) 꽤 길게 둘이서만 연구하던 시기가 있었다. 쥐 관리도, 실험도 둘이서 했다.”
-의사 부부인데도 쪼들리는 연구 생활을 했다. 후회한 적 없나.
“환자를 안 봤기 때문에 급여가 많진 않았지만 생활이나 연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나 가족들도 여러 형태로 도와줬다. 세상이 크게 인정해주진 않았지만 ‘흥미롭다’는 평가도 있었다. 미국 연구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올 땐 내 자리는 없었지만, 3년짜리 펠로십 같은 걸 받을 수 있었다. 3년 끝나면 다음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연구하던 시절, 별명이 ‘유령학자’였다.
“미국, 유럽 등에서 학회가 열리면 연구 결과를 등록했다. 논문은 보냈다. 하지만 발표하러 가진 않았다. 여비가 아까우니까. 논문은 계속 나오는데 정작 만났다는 사람이 없으니 ‘사카구치란 사람이 존재하는 거냐’란 말이 나온 거다.”
-아시아에서 유독 일본이 과학·의학 분야에 강한 이유는.
“무엇이든 시간이 걸린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시대에 서구의 위협 속에 학문을 따라잡아야 했다. 20세기엔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일본에서 꾸준히 연구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나왔다. 서구를 따라 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연구하는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내 연구도 40~50년 전에 시작했고 인정받지 못해도 계속 이어갔다.”
-한국엔 노벨 의학상 수상자가 아직 없다. 돈이 되는 임상의로만 몰린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엔 여러 차례 갔고 여러 발표를 듣기도 했다. 다들 열심이었다. 한국 의사나 의대생은 모두 매우 우수하다. 임상의가 되는 게 생활도 안정적이니, 그쪽으로 몰리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명이 임상으로 가면, ‘다른 걸 해보고 싶다’고 기초의학을 하는 2~3명이 나온다. 기초의학·기초과학이 재밌다는 걸 학생들이 알게 되고, 그걸 해도 생계가 가능한 체계가 갖춰지면 결국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엔 돈이 없으면 연구도 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로 만든 데이터가 없으면 좋은 저널에 논문이 통과하기 어려워졌다. 돈이 없으면 데이터가 초라해 보이는 시대가 됐다. 미국이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중국이 유리하다. 일본은 뭘 해야할까. 단순히 금전 지원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래를 내다보고 기초 연구를 넓게 지탱하는 것이다. 성과가 10년, 20년 뒤에 나올지라도 연구자의 흥미에 맡긴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의학, 과학은 결국 중국이 일본을 추월하지 않겠나.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인구도, 학생수도 다르다. 지원도 중국이 훨씬 커지고 있다. 상위권에 드는 좋은 중국 논문도 계속 늘고 있다. 20~30년 뒤에는 중국에서도 노벨상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리지널이 중요하다. 남을 흉내만 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면 다른 것이 보이기 마련이다. ”
-좌우명이 소심(素心)이라고 하던데.
“처음의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자는 의미다. 요즘은 자극도 많고 사회도 계속 변하지만, 사이언스를 하려면 ‘내가 무엇에 흥미가 있어서 연구를 시작했는가’라는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겐 ‘하나씩, 하나씩’이라고 말한다. 스텝 바이 스텝이다. 모든 걸 한 번에 알게 되거나, 갑자기 큰 일을 해내는 건 없다. 하나씩만 앞으로 나가면 어느 날 꽤 높은 데까지 올라와 있는 걸 알게 된다.”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
1951년 인구 1만명도 안 되는 시가현 오자토마을에서 태어나 재수로 교토대 의대에 합격했다. 일본 최고 명문 의대를 나왔지만, 의사가 되지 않고 의사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26세 때 아이치현 암센터에서 무급 연구생으로 일하면서 생활비는 주변 병원 숙직 아르바이트로 벌었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자가면역 질환을 연구했으며, 1995년 세계 최초로 ‘제어성 T세포(면역세포)’의 존재를 입증했다. 자가면역 치료, 암 치료, 장기 이식 등에 전환점을 마련한 공로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