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미혼인 줄 알고 깊은 관계를 맺은 여성이 ‘정조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까. 남성은 거짓말로 대가로, 얼마를 여성에게 줘야할까. 일본에서 ‘정조권 침해’를 다툰 법정 소송이 제기됐고, 법원은 남성에게 55만엔(약 520만원)의 위자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오사카지방법원은 지난 10월 21일 ‘결혼 활동 매칭앱’에서 만난 남성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 헤어진 이후에 남성이 기혼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조권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여성이 주장한 334만엔의 손해 배상 가운데 일부인 55만엔의 배상을 명령했다. 대신, 여성에게도 이 남성과의 불륜을 소셜미디어(SNS)에 공표한데 대한 책임도 물어, 반대로 남성에게 34만엔을 배상하라고도 판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일본 오사카부에 사는 30대 여성은 2019년 3월 ‘독신 한정’으로 등록 가능한 매칭앱에 등록했다. 자신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연하 남성과 메신저나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같은 해 5월에 처음 식사했다. 이후 여성의 자택에서 성적 관계를 맺었다. 이 여성은 “2개월 정도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호의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을 하는 남성은 바빴고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만날 기회는 제한됐다. 둘은 밖에서 만나,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 남성이 여성의 집에 가끔 들르는 관계였으며, 그나마도 2020년 10월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관계는 자연 소멸했다.
2년이 지난 2022년 9월, ‘거짓말’이 발각됐다. 이 남성의 활동을 소개한 웹사이트에서 유치원 정도의 아이 사진이 있던 것이다. 여성이 라인으로 항의하자, 남성은 “미안하다”고 인정했다. 이 여성은 다시 1년 정도 지난, 2023년 10월 정조권 침해로 남성을 오사카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사실 정조권은 법률상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의 영역으로 본다. 예컨대 상대방을 거짓말로 속이거나, 협박해 성적 관계를 맺은 경우에 정조권 침해로 인정되는 사례가 있다.
여성은 소송에서 두 사람이 이용한 앱이 애초에 ‘미혼자만 등록 가능하다’는 규정을 뒀다는 점을 주장했다. 즉, 이 매칭앱에 등록한 자체가 미혼자라고 위장하려는 고의 의사라는 것이다. 남성이 기혼자라고 미리 알았다면, 육체 관계는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성의 반론은 이 여성과 데이트를 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육체 관계만을 위한 만남이었고, 여성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조권을 침해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선택의 범주였다는 것이다.
오사카지방법원은 10월 21일 판결에서 교제 상대를 찾는 사람에게 상대의 혼인 여부는 ‘성적 관계를 수반한 교제를 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라며 ‘(남성의 독신 위장은) 여성에게 그런 판단 기회를 잃게 하는 행위”라고 했다. 정조권의 침해를 인정한 것이다. 단, 배상액을 낮춘 이유는 둘의 관계가 결혼 전제가 아니었던 점을 고려했다.
같은 법원은 이 여성에게도 34만엔을 남성에게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여성은 남성의 기혼 사실을 안뒤, SNS에 불륜을 공표했는데 남성은 ‘불륜 관계 폭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위자료 등 약 450만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일부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