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군사개입’ 시사 발언 후폭풍으로 중·일 갈등이 급속도로 격화하고 있다. 양국이 설전(舌戰)을 벌이다, 급기야 중국이 공식적으로 자국민에게 ‘일본 방문 자제령’을 내리는 등 실력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충돌이 더 이례적인 것은 다카이치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말 경주에서 ‘전략적 호혜 관계’를 재확인하며 손을 맞잡은 지 보름여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양국 관계가 수교 53년 만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방문 자제령, 분쟁지역 도발
다카이치 총리가 미국·중국 간 무력 충돌을 상정한 대만 유사시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로 본다”고 한 것은 지난 7일이다. 이후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가 “더러운 목을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고, 일본에서는 이 외교관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은 13일 주중 일본 대사를 심야에 불렀고, 14일에는 주일 중국 대사가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나 항의했다. 하지만 다카이치는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14일 밤 소셜미디어에 “일본 치안이 불안정하고 중국인을 노린 범죄가 다발하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 일본 여행을 자제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했다. 이어 15일 중국 6개 항공사는 곧바로 “일본 노선의 항공권 변경·취소 수수료를 무료로 한다”고 발표했다. 형식은 ‘권고’지만 사실상 강제령에 가깝다.
16일 오전엔 함포를 탑재한 중국 해경선 4척이 일본과 영토 분쟁 지역인 오키나와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영해에 진입했다. 일본 해경보안청 순시선의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인근 해역을 항해했다. 중국 해경국은 소셜미디어에 “댜오위다오의 해역을 순찰했으며, 이는 법에 따른 합법적인 권리”라고 밝혔다. 산케이신문은 “중국이 일부러 (침범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는 걸 국내외에 알리려는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초강경 대응은 中 지도부 결정
다카이치 발언 이후 일본 주재 중국 총영사가 즉각적으로 ‘막말’을 내놓은 것과 달리, 중국 외교부 차원의 공식 강경 대응은 약 1주일이 지난 13일부터 시작됐다. 이는 중국 최고 지도부의 숙고 과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일 일본 대사를 초치한 건,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이례적인 초강경 대응은 다카이치의 대만 관련 언급을 ‘하나의 중국’에 반하는 내정 간섭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장하오 주일 중국 대사는 14일 “(다카이치 총리 발언은) 기본 상식에 어긋나고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무력 위협”이라고, 했고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누구라도 중국의 통일 대업을 간섭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정면으로 쳐부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표현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시진핑의 체면’도 강공 배경으로 거론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다카이치와 만났고, 이후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고 일본인의 중국 단기 방문 시 비자 면제도 연장했다. 시진핑이 일본에 손을 내민 상황에서 나온 다카이치가 뒤통수를 쳤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요미우리신문은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앞으로 더는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이참에 강경하게 나가자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항일전쟁 승리 80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중국이 ‘패전국 일본’의 무력 개입 시사 발언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민일보는 14일 논평에서 “패전 후 일본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무력으로 위협했다”고 했다.
◇G20이 향후 양국 관계 가늠자
중국의 강공에도 일본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우선 중국의 ‘일본 방문 자제령’이 일본에 타격을 줄지 미지수다. 올 1~9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은 748만72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은 너무 많은 관광객에 몸살을 앓는 ‘오버투어리즘’이 고민인 상황이라 오히려 “중국인이 안 오는 게 단기적으론 오버투어리즘 대책으로 환영할 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또 일반 여론도 지지율이 80%에 달하는 다카이치 총리를 중심으로 뭉치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 정권은) 답변을 철회하면 ‘(보수) 지지층의 이해를 얻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소수 여당이라 정치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 내각 일부에선 중국과 과도한 대립 구도는 피해야 한다는 기류도 없지 않다. 이치카와 게이이치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중국에 보내 사태를 수습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를 통해 22~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20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 간 만남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치카와는 다카이치의 외교·안보 대리인”이라며 “중국은 외무상이 아닌, 안보국장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에 이번 위기가 이치카와의 실력을 입증할 기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