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8일 ‘미·일 신(新)밀월’을 예고했다. 트럼프와 다카이치는 이날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의 새 황금 시대를 열자”고 한 뒤, 일본에 정박 중인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함께 올랐다. 주변국에 미·일 동맹의 강력함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다카이치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약속도 새롭게 확인했다”고 했다.
이날 일본 도쿄의 영빈관 ‘아카사카리큐’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는 “일·미 동맹의 새로운 황금 시대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만들겠다”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카이치는 “일본의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강한 일본 외교를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연내에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고, 향후 추가 증액하겠다는 의지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우리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며 “미·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는 “항상 일본을 매우 사랑했고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일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것”이라고 했다.
두 정상은 이후 미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을 타고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있는 미 해군 요코스카 기지로 이동해 조지워싱턴호에 함께 올랐다. 일본 내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 후계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가 총리 일주일 만에 과거 아베처럼 트럼프와 경제·안보 밀월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린 원’ 함께 타고 美항모서 연설… 美日, 아베 때처럼 밀착
28일 도쿄 영빈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아베에게서 (당신이) 훌륭한 인물이라고 들었다”며 “아베는 (당신이 총리가 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다카이치는 “아베 총리와 오랜 우정에 감사한다”며 “아베에게서 트럼프 대통령의 역동적인 외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트럼프와 다카이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첫 화두로 ‘아베 신조’를 꺼냈다. 서로를 ‘신조’와 ‘도널드’로 부를 정도로 친밀했던 트럼프·아베 밀월이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카이치 정권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날 회담 통역도 아베 전 총리의 통역 담당이었던 다카오 스나오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이 맡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미 정상회담의 ‘그림자 주역’은 아베 신조였다”고 전했다.
◇원자력 항모에 같이 승선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는 이날 정상회담 후 트럼프와 함께 미군 요코스카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원자력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승선했다. 요코스카 기지까지는 미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을 이용했다. 항모 갑판에는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문구가 적힌 거대한 현수막과 함께 F-18 전투기 두 대가 배치돼 있었다.
조지워싱턴호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 트럼프는 주일 미군들에게 “미·일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관계”라며 단상 옆에 선 다카이치를 향해 “승리자다. 정말 친한 친구가 됐다”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또 “일본이 군사 역량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일본의 F-35 전투기용 미국산 미사일 인도 승인 사실을 공개했다. 방위력 강화를 추진하는 일본 새 정권을 향한 미국의 무기 판매 확대와 동맹 내 역할 분담 강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일본) 도요타는 미국 전역에 100억달러가 넘는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면서 “나가서 도요타를 구매하라(Go out and buy a Toyota)”고도 했다.
트럼프가 다카이치에게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고 언급하자 다카이치 총리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다카이치는 “평화는 말이 아닌, 확고한 결의와 행동에 의해서만 지켜진다”며 “앞으로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다카이치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트럼프는 “정말 아름다웠다”면서 “협상하기는 힘든 사람”이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가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요코스카 기지를 찾아 연설을 했지만 미군 원자력 항모에서 연설한 것은 다카이치가 처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군과 자위대의 최고 지휘관인 두 정상이 해군의 최전선을 함께 시찰해,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국내외에 과시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랴오닝과 산둥에 이어 연내 세 번째 항모인 푸젠을 취역하는 중국을 직접 겨냥한 행동으로 분석됐다.
◇중국에 맞선 희토류 동맹
트럼프와 다카이치는 이날 ‘미·일 동맹의 새로운 황금기를 향하여’라는 문서에 서명했다. 지난달 양국 장관이 체결한 관세 협정을 정상 간 합의 문서로 격상한 것이다. 여기에 희토류를 무기화하는 중국에 맞서, ‘광물 및 희토류 확보를 위한 채굴·가공 협력’에도 서명했다.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희토류 공급망을 두 나라가 구축하자는, 이른바 ‘희토류 동맹’을 맺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구체적인 투자 대상을 선정해, 양국 장관급 ‘광물·금속 투자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양국은 금융 지원, 무역 조치, 비축 제도 등의 정책 수단을 동원해 희토류 등의 공급망 회복력과 안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와 민간의 공동 투자도 확대해 보조금·대출·지분투자·보증 등 다양한 형태로 채굴과 정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미국과 일본은 제3국과의 협력도 추진하며, 상호 비축 체계를 검토하고 광물 자원 지도 작성 등 기술 협력도 병행한다. 이번 협정은 미국이 지난주 호주와 체결한 유사한 프레임워크에 이어 일본과도 희토류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 중심의 ‘탈중국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을 반영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