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취임 기자회견이 열린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눈웃음을 지었다. 지난 21일 밤 10시, 마지막 질문자로 기자가 나섰을 때였다. 눈가 주름이 잡히는 눈웃음은 ‘정치인 다카이치’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날 질문하다 힐끗 본 미소는 뜻밖이었다. 반한(反韓)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아닌가.
“한국에선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으로 한일 관계가 나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실용 외교의 이재명 대통령처럼 한국을 중시하는 외교를 할 것이란 기대도 있는데 총리의 생각을 들려달라.” 사실 불쾌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반일(反日)로 알려진 한국 대통령도 취임하곤 국익을 위해 일본 중시 외교로 노선을 바꿨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물은 것이다.
다카이치는 막힘이 없었다.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이라며 “이런저런 우려가 있는 것 같은데 한국 김을 정말 좋아하고 한국 화장품도 쓰고 한국 드라마도 본다”고 했다. 이튿날 일본 외무성에선 ‘한국 김’ 발언이 화제였다. ‘한국 중시 노선’을 표현한 의도적 발언이란 해석이었다. 취임 회견서 한국 기자의 질문을 받은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개인 취향까지 들먹인 타국 선호 발언은 전례가 없었다.
다카이치가 앞으로 한국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 김을 좋아한다고 갑자기 친한(親韓)이 될 순 없다. 3년 전 “야스쿠니 참배를 중간에 그만두는 등 어정쩡하니까 상대가 기어오른다”고 발언한 다카이치다. 강경파 다카이치 총리가 내년 4월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예대제에 덜컥 참배, 한일 관계를 한순간 망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일부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과거 발언·행동만 들먹이며 비판하는 태도엔 동의할 수 없다. 예컨대 일본 언론이 “일본은 적성(敵性) 국가”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반일주의자라고 비판만 쏟아낸다면 우린 납득하겠는가.
올해 1~5월 일본 정치·외교·언론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한일 관계는 끝장 아닌가”였다. “당신들은 이재명을 모른다”고 답했다.“ 소년공 출신으로 사회의 비주류인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언급한 반일 발언만 보지 말고 취임 이후 발언을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우리도 다카이치라는 인물 전체를 알지 못한다. 도쿄 명문대에 합격하고도 학비 때문에 지방대에 진학했고, 올 초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을 혼자 목욕시키던 60대 여성 정치인. 막 취임한 이웃 국가 정상을 색안경 끼고 보는 건 위험천만하다. 기자에게 보여준 다카치이의 눈웃음이 혼네(本音·진짜 마음)가 아닌 다테마에(建前·겉치레)일지 모르지만, 현재 그는 “한국은 중시, 중국은 우려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국익은 그의 행보를 냉정하게 지켜보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