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9일 일본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의 레이와 천황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 이어 또 한 명을 만난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내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恵·63) 여사다. 도쿄의 황궁과 총리 관저에 ‘손님’으로 가는 트럼프는 28일엔 아키에 여사를 주일 미국 대사관에 초대해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특별한 관계를 구축했던 아베 전 총리의 빈자리를 아키에 여사가 대신하면서 일본의 ‘민간 외교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1기 집권 시절, 그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리”라는 말을 들으며, 미·일 밀월 관계를 구축했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12월 아키에 여사는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를 이시바 당시 총리보다도 먼저 만났다. 아키에 여사는 비행기표를 사비로 끊고 미국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 부부와 만찬을 했다. 트럼프는 아베의 정적이었던 이시바를 못마땅해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키에 여사를 만난 뒤인 올 2월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키에 여사는 지난 5월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러·일 간 외교 관계가 거의 단절된 최악의 상황에서 아키에 여사는 푸틴에게 “일본에 러시아는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고 했다. 푸틴이 아베에 대해 추억하고 애도하자 아키에는 눈물을 흘렸다. 푸틴은 트럼프 못지않게 아베 전 총리와 친밀해 무려 27번이나 만났다.
아키에 여사는 이른바 ‘내조형 부인’은 아니었다. 총리 부인 시절엔 ‘우즈’라는 이자카야(일본식 술집)를 운영했다. 작년 초 본지 인터뷰에선 “당시엔 다들 총리 부인이 왜 술 파는 가게를 하냐고 비판하니,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며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말도 싫었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한국과 대립했던 남편과 달리, 한류 팬으로 ‘집안의 친한파 야당’으로 불리기도 했다. 자민당은 남편의 지역구 보궐선거 출마를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3년 전 남편이 피살된 뒤, 일본 국익이 필요한 장면마다 등장하고 있다. 지난 21일 출범한 다카이치 내각에서는 더 중요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일본 내에서 나온다. 남편이 차기 총리로 기대했던 다카이치를 적극 지원할 것이란 분석이다. 아베 전 총리는 피살 5개월 전 일본 잡지 분슌 인터뷰에서 “다카이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데다 담력도 있다. 유력한 총리 후보다. 흠이라면 너무 혼자서 일을 떠안는다는 정도”라고 했다.
아키에 여사는 지난달 대만 정치대학이 설립한 ‘아베 신조 연구 센터’ 개소식을 계기로 대만을 찾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한 다음 날인 22일에도 대만 가오슝시를 찾아 아베 동상에 헌화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대만 정책을 계승할 다카이치 총리를 측면 지원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키에는 “남편도 천국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첫 여성 총리로서, 일본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