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선출’이 예정된 수순으로 여겨졌다. 자민당 의석수가 과반에 미달하지만 제1당인 데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버티고 있고, 야당도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가 총리가 되지 못하는 ‘이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예 ‘다카이치 총리 선출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10일 공명당이 26년 만에 자민당과 이별을 선언하면서 일본 총리 선거는 치열한 수싸움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변’ 확률이 한층 높아졌고, 다카이치가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향후 정국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명당은 왜 이탈했나
자민당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인 1999년 성립한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26년간 일본 정치를 주도했다. 민주당에 정권을 뺏긴 시절에도 유지됐고,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권 탈환에는 1등 공신이었다.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종교 단체 창가학회는 유권자 수는 적지만 확실한 표였다. 창가학회는 전국 자민당 각 후보에게 1만~3만 표씩 몰아줬고, 자민당은 일부 소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공명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하지만 이날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앞으로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악수하고 헤어졌다”며 공식 결별을 발표했다. 평화의 정당을 표방하는 공명당은 애초 자민당 총재 선거 때부터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를 반대했었다. 당시 사이토 대표는 “(후임 총재가) 중도 보수라는 우리 이념과 맞지 않는 인물이라면 연립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공명당 입장에서도 연립 이탈은 정당의 운명을 건 결정이기 때문에, 이날 전격 이별 선언은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가 취임한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비자금 스캔들’ 대응, 과도한 외국인 배척 등 3가지 문제점을 지목하며 해결책을 요구했다. 사이토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외국인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정치자금 규제에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 헌금을 정당 본부와 광역지자체 지부에서 받도록 한정하고, 그 밑의 지방 지부는 제외하자는 공명당의 요구를 자민당이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다카이치가 정치자금 스캔들의 당사자인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 등 강성 우파를 주요 당직에 배치하면서 공명당을 더 자극했다는 평가다.
다카이치가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 비밀 회동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일본 언론은 이를 ‘새로운 협력 정당을 찾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사이토 대표는 “연립의 대의를 지지자에게 설명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연립을 이탈해도) 뭐든지 반대하는 적(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수싸움 복잡해진 총리 선거
연립 정권에서 공명당이 빠지면서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다급해진 다카이치는 이날 “총재가 된 지 6일째인 나에게 정치자금규제법을 정하라는 건 독재하라는 것”이라며 “(연립 유지를 위한) 협의를 지속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각각 총리 지명 선거를 실시하며 결과가 다를 경우엔 중의원 결과를 따른다. 중의원이 키를 쥔 셈이다. 총 465석의 중의원에서 자민당은 196석을 가진 제1당이다. 야당은 입헌민주당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공명당 24석 등이다.
총리 선거에서 과반 233표를 얻으면 당선이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간의 결선 투표에서 다수 득표자가 당선된다. 모든 정당이 차기 총리로 각자의 대표에게 투표하면 다카이치는 1차 선거에서 1위를 한 뒤 결선에선 다수 득표자가 된다.
변수는 입헌민주당이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에 다마키 국민민주당 대표를 야당 단일 후보로 같이 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의석수가 5분의 1도 안 되는 소수당에 총리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야당 3곳이 합치면 210석으로 자민당 의석을 능가한다. 연립에서 이탈한 공명당까지 합세한다면 234석으로 과반이 된다.
국민민주당은 당초 입장은 “총리 지명은 매우 무거운 사안으로, 단순히 덧셈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정치 이념이 다른 야당이 뭉쳐서 정권을 교체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원칙론이다. 하지만 공명당의 연립 이탈로 변화가 감지된다. 국민민주당 다마키 대표는 이날 기자단에 “총리를 맡을 각오는 있다”고 했다. 또 소셜미디어에 “국민민주당은 정치 자금 투명화를 위해 공명당과 협력할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