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온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戰犯)을 분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했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현재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서열 2위이자,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중량급 인사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28일 후지TV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이 합사된 사실과 관련, “황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거리낌 없이 참배할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책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실상 A급 전범 14명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분사하자는 주장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을 위해 숨진 246만6000여 명의 영혼을 기리는 곳이다. 하지만 1978년 A급 전범들을 합사하면서, 이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논란이 돼 왔다. 합사 당시 쇼와 천황은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의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본 역대 천황은 1975년을 마지막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고이즈미는 이 문제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총리 취임 시 참배 여부엔 “적절히 판단하고 싶다”고만 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속해온 다카이치는 “야스쿠니 신사는 전몰자 위령 시설이며,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라며 “(전범은) 형이 집행된 단계에서 일본 국내에선 이미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A급 전범 합사는 문제없다는 취지다.
4일 치러지는 총재 선거에서 하야시 관방장관이 승리해, 차기 총리가 될 경우엔 ‘A급 전범의 분사’가 주요 논쟁으로 부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하야시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상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에게 밀리는 추세다. 다만 최근 하야시 지지율이 상승해 다카이치를 제치고 고이즈미와 함께 결선에 오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막판에 표를 결집해 역전에 성공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소속 의원과 당원의 투표를 절반씩 반영한다. 아사히신문의 조사 결과, 당 소속 의원(295명)은 각각 고이즈미(72명), 하야시(57명), 다카이치(37명) 지지 의사를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이 자민당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고이즈미(40%), 다카이치(25%), 하야시(16%)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