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일본은 각료 회의를 열고 주로 개발도상국으로 한정하던 국제협력은행(JBIC)의 투자 대상국과 품목을 미국 등 선진국으로 확대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미국과 맺은 5500억달러(약 780조원) 투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첫 절차를 완료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투자 각서에 서명한 이상, 잡음 없이 대미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수출입은행과 유사한 국제협력은행은 일본의 대미 투자금 상당 부분을 떠맡을 주체다. 말하자면, 미국의 투자 프로젝트에 달러를 집어넣을 곳이다.
일본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투자 각서의 입금 규정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 프로젝트를 지정하면 ‘45영업일(약 두 달) 이상’ 경과한 날에 일본은 지정된 계좌로 즉시 이용 가능한 달러 자금을 입금해야 한다. 이른바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이다. 일본 정부에 주어진 입금 기한이 최단으론 두 달에 불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은 “일본 기업이 전략적인 분야에서 (미국에) 강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건 일본의 경제와 국가 안보에도 극히 중요하다”며 “신속히 (미국)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투자를 약속한 마당에 투자 입금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유리하다는 전략도 있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선불(upfront)’ 또는 ‘서명 보너스(signing bonus)’ 같은 표현을 동원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은 시행령을 개정해 언제든 현금 입금이 가능하도록 준비함으로써, 합의 이행 의지를 보이고 미국이 요구하는 ‘안전장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달 초만 해도 대미 투자 각서를 ‘레이와(현재 천황의 연호) 불평등 조약’이라고 정부를 공격했던 일본의 야당과 언론은 점차 비판을 삼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과 추가적인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우호 관계 속에서 실리를 챙기는 게 국익이란 판단이 일본 여론의 저변에 깔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