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5500억달러(약 765조원)의 대미 투자 방식’이 공개됐다. 양국이 지난 7월 맺은 무역 합의를 문서화해 그동안 모호했던 내용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선정과 운영은 전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악하게 된다. 대미 투자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미국이 다시 관세를 올릴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의 투자를 약속한 우리나라도 유사한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왼쪽) 미 상무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이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 등을 포함한 무역 협정에 공식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X

5일 니혼게이자신문·로이터 등에 따르면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4일 워싱턴 DC 미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대미 투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러트닉 장관은 “역사적인 합의를 이룬 이시바 정권과 트럼프 정권은 특별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투자·융자·융자 보증을 최고 5500억달러까지 제공하는 것”이라며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투자”라고 했다.

양해각서는 이번 투자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선 일본의 자금 투자 집행 기간은 2029년 1월 19일까지로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이다. 반도체, 의약품, 중요 광물, 조선, 인공지능(AI), 에너지 등 경제 안보 분야가 투자 대상이며, 각 프로젝트는 10~20년짜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설치할 투자위원회가 투자할 프로젝트를 추천하면 트럼프가 결정하게 된다. 미국 상무장관이 의장을 맡고, 미국 측 인사로만 구성된다. 각 프로젝트 대표도 미국이 지정한 인물이 맡는다. 단 장비·부품·서비스는 일본 기업에서 조달한다. 예컨대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경우 일본 기업의 반도체 장비와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선정하면, 일본은 지정된 계좌에 달러를 입금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토지 등을 현물 출자할 것으로 보인다. 양해각서에는 일본의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닛케이는 “일본의 국제협력은행(JBIC)이나 일본무역보험(NEXI)이 출자·대출하거나, 민간 기업에 대출 보증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미국 프로젝트 투자금은 원금에 가산 금리를 더한 뒤, 상환되는 구조”라고 했다.

투자 수익의 배분은 2단계다. 일본이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시점까진 미·일이 50%씩 가져가며, 이후에는 미국이 90%를 갖는다.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돈을 댄 일본의 이익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번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미국이 선정한 프로젝트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일본이 사실상 거부할 권한이 없는 구조다. 로이터는 “일본은 투자 자금을 제공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으나, 결정 전에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일본이 자금 출자를 거부할 경우엔 미국은 다시 상호 관세나 자동차 관세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은 일본이 각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투자액 제공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안은 (관세를) 올릴 의도를 갖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