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한 일본군이 중국인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장쑤(江蘇)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는 10년간 자료를 수집해 6일 발간한 ‘난징 대학살 사료집’에서 “항저우(杭州)에서 난징에 이르는 길 주변 물웅덩이마다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일본군 병사의 증언을 실었다.

최근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내세워 돌풍을 일으킨 참정당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80년(15일)을 앞두고 전쟁 과오를 부정하는 듯한 행보로 논란을 빚고 있다. ‘난징 대학살은 조작됐다’는 취지의 참정당 의원 글이 극우 여론의 호응을 얻고, 당대표는 소속 의원들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야후재팬 뉴스 사이트에서는 참정당 하지카노 히로시 참의원 의원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전한 기사에 4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게시물에서 하지카노 의원은 “난징 대학살이 정말 있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데 유감이다. ‘태우지 말고, 범하지 말고, 죽이지 말라’는 3대 계율을 엄수한 일본군은 세계에서 가장 신사적인 군대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군이 난징의 난민 캠프에서 중국인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주는 아사히신문 보도 사진도 인용했다. 일본군이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중일전쟁 중이었던 1937년 중국 난징에 진입한 일본군이 수십만 명을 무차별 학살·강간한 난징 대학살은 최악의 전쟁 범죄로 꼽히는 사건이다.

일본 네티즌들은 “중국군 잔당을 섬멸한 것을 (학살로) 왜곡했다”는 등 동조하는 댓글에 수천~수만 건씩 공감을 표했다.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대부분 “대체 죽은 시체들은 어디 있는지, 증거가 없다” “당시 난징 인구가 20만명인데 (수십만 명 학살은) 말도 안 된다” 같은 것들이다. 전 일본 축구 국가대표 혼다 게이스케도 X에 “나도 그렇게(학살은 없었다고) 믿는다”는 글을 올렸다가 중국 팬들이 반발하자 “나는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물러섰다.

난징 대학살은 일본 정부도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 외무성의 공식 입장은 “비전투원에 대한 살해·약탈 행위 등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피해자의 구체적 수치는 정확히 확인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피해자 규모는 극동국제군사재판(2차 대전 전범재판)이 20만명 이상, 중국 난징군사법정은 30만명 이상, 일본 일부 연구자들이 수만~2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일본군 지휘관이었던 마쓰이 이와네는 학살을 방임한 혐의로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한편 참정당 가미야 소헤이 대표는 최근 “당 소속 의원 18명은 15일에 전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