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고시엔은 모든 고등학교 야구부의 꿈의 무대다. 사진은 작년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교가 고시엔에서 우승하는 장면/뉴스1

일본 최고의 고등학교 야구 축제인 고시엔(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이 학폭 논란에 얼룩지고 있다. 야구 명문 고등학교의 야구부 기숙사에서 집단 폭행이 있었는데도 피해자만 전학시킨채 다른 가해자들이 고시엔 본선에 출전한 것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이런 사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뒤늦게 해당 고등학교는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기권했다. 일본 고시엔 역사에서 예선이 아닌, 본선 무대에서 진출팀이 학폭과 같은 불명예로운 사건으로 기권한 첫 사례다.

11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히로시마시에 있는 고료고등학교 야구부는 10일 고시엔 2차전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고료고등학교는 그동안 고시엔의 본선 출전권만 26회 차지했고, 준우승 4회를 기록한 야구 명문이다. 올해도 히로시마현 예선을 뚫고 히로시마현 대표팀으로 출전했고, 1차전에서도 역전승했다.

갑작스론 기권은 자발적이 아니라, 여론에 밀린 선택이었다. 발단은 올 1월 발생한 학폭 사건이다. 올 1월 22일 야구부의 1학년 부원이 2학년 선배 4명에게서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이다. 야구부 생활 규정에선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는데 이를 어기고 먹었다는 이유다.

2학년생은 가슴과 뺨을 때리는 폭행을 가했다. 당시 고료고등학교는 일본고교야구연맹에 폭행 사건을 알렸다. 하지만 폭행 부원은 ‘일정 기간(1개월) 공식전 출전 금지’하는 수준의 징계에 그쳤다. 피해자인 1학년생은 전학갔다.

고료고등학교는 이후 고시엔 예선전에서 연전 연승해, 본선행 티켓을 땄다. 본선이 열리기 직전인 7월 하순, SNS에 ‘야구부내 폭력 폭로’ 글이 올라왔다. 비판 여론이 들끊자, 학교측은 부랴부랴 이달 6일 홈페이지에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당시 대응한 내용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SNS에는 가해자의 이름과 사진이 등장했고, 가해자 추정 학생이 고시엔의 본선에 출장했다는 글도 등장했다. 과거에도 고료고등학교 야구부에서 감독이나 코치, 선후배간 폭력·폭언이 있었다는 추가 폭로도 나왔다.

고료고등학교 입장에선 그래도 쉽게 기권을 선택하지 못했다. 고시엔은 야구부원 모두의 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못을 박은 건,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상(장관)이다. 아베 문부과학상은 8일 이 사건을 언급, “매우 유감이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이 학교의 출전 여부는)일본고교야구연맹에서 적절히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 장관의 강한 발언에 더는 묻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고료고등학교 측은 2회전 경기 기권과 함께 나카이 데쓰유키 감독이 사임한다고 10일 발표했다. 본선 2차전 상대는 미에현을 대표하는 쓰다학원인데 부전승이 확정됐다. 고시엔 본선에서 기권패는 2021년에 출전 선수의 코로나 감염 탓에 한 차례 있었지만, 학내 폭력과 같은 불명예스러운 기권은 처음이다. 과거 예선전에선 종종 학내 폭력 탓에 기권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고료고등학교 측은 기권을 발표하면서도 SNS의 과도한 비난에 문제를 제기했다. 호리 마사카즈 교장은 “억측에 근거한 내용이나 학생의 얼굴 사진도 올라왔고, 야구부 기숙사에 대한 폭파 예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항의전화 탓에 학교 행정 업무도 마비됐다고 했다. 고료고등학교에는 3일~8일 동안 여섯개 전화 회선에 거의 쉴새없이 전화가 왔다. 대부분 ‘왜 사퇴하지 않느냐’는 항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