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한국 대사관의 공사가 부재한 대사를 대신해 일본 각료(장관)와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지난 25일 일본 총리 관저의 고위 관계자와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서 물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는 답했다. 다른 자리에서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도 같은 질문에 “대사가 아닌 공사가 유력 정치인을 독대하긴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급(級)을 중시하는 일본 관행으론 당연한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권(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주일 특명전권대사’와 공사는 다르니 일본을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 일본 정치권은 전에 없던 대혼란을 겪고 있다.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패배와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사퇴 논란 탓이다. 지난 23일 이시바 총리가 기자들 앞에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발언했지만, 다음 날 요미우리신문은 정부·여당 간부를 여럿 인용해 1면 톱 기사로 ‘이시바 총리가 퇴진한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본인의 공식 발언보다 익명의 주변 인물을 인용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여자 아베’라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하며, 겨우 정상화된 한일 관계의 시계를 되돌릴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정국이 이렇게 ‘카오스(혼돈)’인데 최전선에서 정보 수집과 한일 관계의 향후 동향을 고민할 한국 대사는 도쿄에 없다. 정부의 귀국 지시에 따라 박철희 주일 대사는 지난 14일 귀국했다. 박 대사는 이시바 총리나 하야시 관방장관은 물론이고 이시바 퇴진론을 주도하는 옛 아베파와도 가깝다. 일본 정세 파악이 중요하고 까다로운 시점에 이시바와 반(反)이시바를 넘나들며 본국에 정확히 보고할 인물이 사라진 것이다.

새 정권이 전(前) 정권 인물을 교체하는 걸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예고된 ‘7월 일본 정국 혼란’을 앞두고 후임 대사 없이 현 대사를 귀국시킨 조치가 국익에 맞았을까. 일본 정치권에선 한 달 전부터 ‘자민당 참패와 이후 이시바 사퇴 시나리오’가 파다했다.

관세 문제도 그렇다. 26일 도쿄의 와세다대에서 한국경제학회·일본경제학회가 공동 개최한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한 한일의 대응 방안 및 협력’ 포럼은 관세를 15%로 타결한 일본에서 하나라도 배워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일본 측은 경제학자 말곤 경제 부처 관료의 모습은 없었다. 한국 대사가 뛰었다면 달랐을지 모른다. 한국 대사의 빈자리는 서울의 인사권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컸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후 첫 국무회의에서 전 정권 장관들에게 “우리는 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대리인들”이라며 “조금 어색하겠지만, 공직에 있는 기간만큼은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했다. 적어도 주일 대사에겐 해당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 구멍과 손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