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인트 낮춰줄 테니, 그 대신에 이것을 줄 수 있나.”
지난 22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을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앉혀 놓고 70분간 끊임없이 ‘딜(Deal·거래)’을 했다. 트럼프는 관세율을 1%포인트 낮출 때마다 “미국산 쌀 수입을 더 늘릴 여지가 있다” “반도체 투자와 지원금도 늘릴 수 있지 않나”라면서 구체적인 대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일본 협상팀은 “담당자가 10명은 있어야 버틸 수 있을 듯한 압박감이었다”고 했다.
요미우리·마이니치·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24일 ‘상호 관세 15%, 자동차 관세 12.5%’로 최종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의 막전 막후를 협상에 참여했던 관료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세일즈맨처럼 협상장에서 하나씩 항목을 짚어가며 압박하는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일본 장관은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가장 적은 양보안으로 버티는 데 전력했다. 트럼프는 마지막 순간에도 “보잉도 더 많이 사줄 수 없나”라고 했다. 아카자와가 보잉 항공기도 100대 구매하기로 약속하자, 트럼프는 “오케이”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최종 타결된 순간이다.
백악관 ‘거래의 현장’에서 일본의 미국 투자 약속 금액은 당초 미·일 협상 대표들이 합의한 4000억달러(약 550조원)에서 5500억달러(약 750조원)까지 늘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숫자를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트럼프만 가지고 있었다”며 “마지막에 뒤집힌 나라들도 있었다. 전혀 방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책상 위에 놓인 패널에서 ‘4000억달러’ 숫자를 지우고 직접 ‘5000억달러’로 수정한 사진도 공개됐다. 또 패널에는 ‘(미국의) 이익 배당 50%’라고 쓰여있는데, 이 역시 트럼프의 발표 때는 ‘90%’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즉석에서 협상 내용 상당 부분을 수정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세 협상의 막후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일본 측에 큰 도움이 됐다. 트럼프 회담 전날 밤 러트닉은 아카자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트럼프 회담 리허설’을 진행했다고 한다. 아카자와가 협상에 실패해 판이 뒤집힐까 예행연습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실제 아카자와는 트럼프와의 직접 담판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트럼프와 첫 면담을 한 아카자와는 당시 “고개를 들어 인사하고 나니,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압(壓)’을 느꼈다”고 했다. 아카자와는 트럼프가 건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가 굴욕 외교라는 비판도 받았다. 요미우리신문은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에게 일본 협상안을 들고 가 ‘타결해야 한다’며 10차례 정도 설득을 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4개월의 협상 동안 ‘자동차가 국가다’라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일본의 자동차는 대미 수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트럼프가 4월 아카자와와 만나 철강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철은 국가다”라고 말하자, 아카자와는 “일본엔 자동차가 국가다”라고 답했다. 상호 관세와 함께 자동차 추가 관세도 인하하지 않으면 일본도 관세 합의 못 한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대미 투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지침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아카자와에게 “투자안은 미국에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양보하지 말라. 철저하게 밀어붙여라”라고 지시했다. 이달 초 트럼프가 ‘일본은 버릇이 나쁘다’며 35%의 관세 가능성으로 압박했을 때도, 이시바 총리는 “동맹국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시바 총리가 관세 합의 이후에 사임하더라도, 미국과의 협상에 강한 자세로 임한 그를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