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최근 인수인계를 거부하거나 소셜미디어에 내부 정보를 폭로하는 등 회사에 피해를 입힌 뒤 퇴사하는 이른바 '리벤지(복수) 퇴사'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한 직장인이 퇴직서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reach-plus.biz

일본의 한 건설회사는 최근 최대 거래처에서 일방적인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다. 실무자들이 매달려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얼마 후 이유가 전해졌다. 최근 퇴사한 30대 사원이 회사를 나가기 전 거래처 관계자들에게 “우리 회사를 지탱하는 기술자 절반 이상이 곧 정년 퇴직하고, 일을 이어받을 젊은 직원은 없어 미래가 없다”고 ‘뒷담화’를 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직장에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다 퇴사하는 이른바 ‘리벤지(복수) 퇴사’가 확산하고 있다. 일이 몰리는 성수기를 기다려 갑자기 사직서를 내거나, 인수인계를 거부하고 소셜미디어에 불만이나 내부 정보를 폭로하는 등 떠나는 회사에 ‘복수’ 목적으로 피해를 주는 행위다.

한 IT 기업 인사 담당자는 “중책을 맡았던 엔지니어가 인수인계도 없이 퇴사하곤 업계에 ‘그 회사는 장래성이 없다’고 흉을 보고 다녔다”고 도요게이자이신문에 최근 밝혔다. 다른 IT 기업에선 퇴사 직원이 사내 야근 실태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채용 지원자가 급감했다.

리벤지 퇴사 확산의 원인으론 최근 확연해진 ‘구직자 우위 시장’ 현상이 꼽힌다. 저출산 여파로 구직보다 구인이 많아져 채용 시장에서 취업 준비생이 우위가 된 현상을 말한다. 직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동종 업계 이직이 힘들었던 과거와 달리 회사에 ‘복수’를 해도 다음 직장을 찾기가 어렵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도요게이자이는 “옛날엔 불만이 있어도 ‘(회사에) 신세를 졌으니까’란 생각에 참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최근 젊은 층일수록 이런 귀속 의식이 사라지고 참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재팬도 “리벤지 퇴사는 요즘 노동자가 묵묵히 견디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표시”라며 “Z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가 직장에 대한 충성심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원인을 퇴사자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엔 ‘경험을 쌓게 한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의 부서를 희망 직무와 다르게 무작위 배치하는 기업 문화가 있다. 이를 ‘배속 가챠(뽑기)’라고 일컫는다. 경영 칼럼니스트 요코야마 노부히로는 “기업 체계와 직장인이 바라는 인식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만이 쌓였다”고 했다.

리벤지 퇴사는 남은 동료에게도 심리적 영향을 준다. 직원 한 명의 퇴사로 회사가 흔들리는 모습에 동요가 확산한다는 것이다. 도요게이자이는 “한 명의 리벤지 퇴사가 조직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타격을 입힌다. 경영자와 인사 담당자들은 그 전조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