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홋카이도 클래식' 라면 가게에서 직원이 손님에게 내놀 라면을 준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최근 방문한 일본 도쿄 긴자의 일본식 ‘함바그’ 가게는 일본어 메뉴판과 영어 메뉴판의 가격이 달랐다. 해외 관광객에게는 1인당 500엔의 착석료를 일률적으로 더해 받았다. 함바그와 커피를 시키면 일본인은 1800엔, 한국인 관광객은 2300엔이다. 도쿄의 한 식당 관계자는 “해외 관광객 입장에선 너무 싼 가격 아닌가. 혼잡도를 피하는 대가로 합당한 가격을 내라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싸구려’를 노리는 손님을 차단하기 위해 관광객에게 웃돈을 받겠다는 뜻이다.

장기간 지속된 인플레이션에 최근 엔화 가치 하락까지 겹치면서 일본인 사이에선 최근 ‘싸구려 일본(야스이 닛폰)’이란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일본 엔(円)이 달러·유로 등 기축통화를 비롯해 한국의 원, 중국의 위안, 인도의 루피 등 다른 화폐에 비해서도 가치가 하락하자 ‘싸서 간다’며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 상황을 자조하는 말이다.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의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본 국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환율인데, 일본이 이 정도로 ‘싸구려 일본’은 아니지 않나. 현재 엔저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지갑’이 가벼운 관광객들이 엔화 가치가 유발한 ‘싼 맛’을 즐기기 위해 일본에 과도하게 몰려들어 오버투어리즘(관광 공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도 일본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외국인 관광객 308만명이 일본을 방문해 역대 최다(最多)를 기록했지만 일본 여론이 싸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관광객이 일본을 찾는 이유가 ‘매력적인 나라’여서라기보다 ‘값싸게 즐기는 나라’여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싸구려 일본’이 좋아서 온 관광객들은 쓰는 돈이 상대적으로 적어 일본 경제에 대한 기여도도 낮은 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물가가 잘 오르지 않는 가운데 엔저가 겹치기 시작한 지난해, ‘싸구려 일본’의 실상을 보여주려 일본 서민 음식인 라멘(라면)의 국가별 가격을 비교해 보도했다. 일본 라면 가격(880엔)은 미국 뉴욕(21.50달러, 당시 환율로 3100엔)의 3분의 1도 안 됐다. 올해 엔화 가치가 더 하락했기 때문에 미국인이 체감하는 일본의 라멘 가격은 더 싸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인도의 라멘 가격(뭄바이 기준, 1016루피·1800엔)도 일본의 두 배가 넘었다. 닛케이는 지난 20~30년간 물가와 임금이 둘 다 오르지 않는 상황을 일본인들이 값싼 물가로 견디다 보니 ‘싸구려 일본’ 문제가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엔저가 겹치며 저렴하게 놀려는 관광객이 급증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해 오사카처럼 외국인에게 관광세를 부과하려는 지방정부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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