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

지난해 11월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문을 연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점포. 간판들이 모두 오사카 사투리로 쓰여 있다. 장식물들은 기존 유니클로를 상징하는 빨간색에,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 ‘한신 타이거스’의 상징색인 검은 테두리가 둘린 노란색으로 꾸며졌다./fashionsnap.com

일본 간사이(關西·관서) 지방 대표 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지 오사카에 지역 특색이 두드러진 독특한 옷가게가 들어서 화제입니다.

지난해 11월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문을 연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점포는 매장 판촉물과 내부 간판들이 모두 오사카 사투리로 쓰여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문구는 ‘오오키니(おおきに)’, ‘매번 신세 지고 있습니다’는 ‘마이도(まいど)’란 지역 특유의 방언들로 적혔죠. 오사카 상인들이 즐겨 쓰는 줄임말이자 사투리로, 도쿄 등 다른 지역에선 쓰이지 않는 말들입니다.

지난해 11월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문을 연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점포. 내부 장식물들은 기존 유니클로를 상징하는 빨간색에,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 ‘한신 타이거스’의 상징색인 검은 테두리가 둘린 노란색으로 꾸며졌다./wwdjapan.com

점포 내부 장식물들은 기존 유니클로를 상징하는 빨간색에,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 ‘한신 타이거스’의 상징색인 검은 테두리가 둘린 노란색으로 꾸며졌어요. 니혼게이자이는 “지금까지의 유니클로 점포들과 확연히 다른 컨셉”이라며 “특유의 ‘오사카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오사카스러움’을 강조하려는 노력은 내부 디자인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사카 식당이나 기업들과 ‘콜라보(협업)’한 의류들이 한정 판매되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콜라보에 참여한 업체만 유명 오코노미야키(일본식 빈대떡) 체인 ‘네기야키야마모토’와 치즈케이크 전문점 ‘리쿠로오지산노미세’, 라멘집 ‘도톤보리 가무쿠라’ 등 일곱 곳입니다.

일본 오사카 신사이바시 유니클로에서 판매하는 티셔츠. 지역 유명 다코야키(たこ焼き) 체인 '코가류(甲賀流)'와 콜라보(협업)했다./코가

각 가게를 대표하는 음식이 일러스트로 그려진 티셔츠가 매장 4층 특별 코너에 진열됐습니다. 기업뿐 아닌 오사카 출신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자체 상품들도 판매 중이라고 하네요.

오사카는 도쿄 등 수도권과는 확연히 다른 사투리와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오사카 사람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다소 난해하다고도 볼 수 있는 컨셉에도 가게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확한 방문객 수가 집계되진 않았으나, 니혼게이자이는 “전체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오사카 신사이바시 유니클로 점포에 '로컬 콜라보레이션(협업)' 의류들이 진열돼 있다./fashionsnap.com

가게를 찾았던 손님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일본이 아닌 ‘오사카에 왔다’는 느낌이 강해 재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점장 가와카미 데츠야씨는 니혼게이자이에 “손님들로 하여금 쇼핑뿐 아닌 ‘어디에도 없는 유니클로’를 체험하게 해 지역을 새로운 관광 명소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이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신년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일본 도쿄 시부야에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AFP 연합뉴스

일본에선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이후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오버투어리즘(관광 공해)’ 문제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했습니다. 코로나 때 떠난 직원들이 돌아오지 않아 호텔·식당 등 관광업과 택시 등 교통 인프라는 인력난에 빠졌고요. 거리는 노상 흡연과 쓰레기 투척 등으로 혼잡해졌습니다.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해당 지역엔 국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이내 ‘외국인 전용 도시’로 변해 특유의 색깔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죠. 이에 오사카에 생긴 유니클로 새 점포처럼, 지역색을 사수하려는 민간의 시도가 주목받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일본 교토 대표 관광지이자 사찰 기요미즈데라 인근 거리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로이터 뉴스1

이웃 도시 교토에선 지역 정부가 직접 지역색 사수에 나섰습니다.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 교토는 전통스러운 목조 건물과 탁 트인 자연경관으로 유명합니다. 교토 당국은 프랜차이즈 점포들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이러한 풍경이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2007년 9월부터 ‘신(新) 경관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가게들의 ‘간판 색’을 규제하는 것인데요.

일본 교토에 있는 한 맥도날드 점포 외관. 특유의 빨간 간판 없이, 검은 바탕색에 노란 'M'자 로고만 그려져 있다. 교토 당국은 프랜차이즈 점포들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자연경관 등 특유의 지역색이 사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간판 색을 규제하는 ‘신(新) 경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tsunagujapan.com

글로벌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가 대표적입니다. 맥도날드의 상징은 강렬한 빨간 바탕에 아치 모양으로 그려진 노란 ‘M’자 로고입니다. 하지만 교토 점포들은 바탕색 채도가 크게 떨어져 적갈색에 가깝거나, 혹은 아예 빨간색 없이 검은 바탕에 노란 로고만 그려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일본 교토 스타벅스 니넨자카 야사카차야점 외관. 특유의 녹색 간판 없이 로고만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교토 당국은 프랜차이즈 점포들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자연경관 등 특유의 지역색이 사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간판 색을 규제하는 ‘신(新) 경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tsunagujapan.com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는 간판에서 특유의 녹색 바탕을 아예 없앴습니다. 대신 주변의 건축물들과 아우러지도록 오래된 목조 건물을 개조해 입점했죠.

일본 교토에 있는 편의점 로손 외관. 푸른 간판 색이 최소화돼 있다./tsunagujapan.com

해외 체인뿐 아니라 일본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로손 등도 교토에 한해선 간판 색을 톤다운하거나, 눈에 띄지 않도록 크기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수도 도쿄가 24시간 꺼지지 않는 간판들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도시스러움’을 부각했다면, 교토는 고즈넉한 거리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색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세븐일레븐 외관. 특유의 빨간 간판 색이 채도가 크게 떨어져 적갈색에 가까워 보인다./tsunagujapan.com

일본 민영방송 TBS는 “교토에선 건물은 개인 소유더라도, 경관은 ‘공공의 재산’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2월 7일 스물네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쏟아지는 관광객들 속 지역색을 지키려는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행복한 연휴 되시고,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2~23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자니즈 사태, 미뤄왔던 ‘결혼 러시’ 쏟아진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24/TLFXMW33JJG67EX3IZJGOAQQQI/

“에어컨 고장났다” 119신고, 이제 7만원 벌금 뭅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31/W5DOYS3NSNCLTP7JXLJ335NWGE/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