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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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구급차/hint-pot.jp

“실제로 있었던 구급 신고 시리즈! 다음 선택지 중 실제로 있었던 119 신고는 무엇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尼崎)시 소방국이 지난 22일 공식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올린 영상 하나가 화제입니다. 영상엔 세 문제가 담겼는데요. 1번부터 함께 풀어보시죠.

☞1번 문제

①집 안에 벌레가 들어왔어요. 와서 잡아주세요!

②벌레에 물려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소방관들이 지난 22일 공식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올린 영상. '실제로 있었던 구급 신고 시리즈'란 제목으로, 선택지 중 실제 있었던 119 신고 사례가 무엇일지 묻는 문제를 제출했다./인스타그램

정답은 무엇일까요? 바로 ‘둘 다’입니다. 1번 문항 같은 신고가 있었다니 다소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틀려서 아쉬운 분이 계신다면, 다음 2~3번 문제 연달아 풀어보시죠.

☞2번 문제

①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가 되려 기분이 나빠졌어요. 이럴 땐 어떡하죠?

②아이가 머리를 부딪쳐 상태가 좋지 않아요! 어서 와서 도와주세요.

☞3번 문제

①(집안 사람이) 열사병으로 의식이 없어졌어요. 와서 구해주세요.

②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워요. 시원한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정답 골라 보셨나요?

119 신고를 받고 환자를 이송 중인 일본 소방관들/효고현

대부분 예감하셨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맞습니다. 모든 문제의 정답은 ‘둘 다’입니다.

일본 소방관들이 훈련 중인 모습/사이타마현 소카시 야시오 소방조합

일본에서 기상천외한 119 신고로 소방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전국 구급차 출동 건수는 723만건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위 문제들에서 각각 ②·②·①번 문항처럼 위급한 경우엔 주저 없이 119에 신고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문항들처럼, 터무니없는 신고들로 구급차가 과잉 출동하고 있다는 게 현지 소방국들의 호소입니다.

일본 미에현 마쓰사카시 로고

일본 혼슈(本州) 미에현 마쓰사카(松阪)시에선 2022년 구급 이송됐으나 입원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된 경증 케이스가 전체 56.6%, 모든 신고의 과반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지역 소방 당국은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고 판단,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119 신고로 구급차가 출동했으나 입원하지 않았을 경우, 7700엔(약 7만원)을 징수한다는 결정입니다.

7700엔이란 금액은 ‘선정요양비(選定療養費)’ 제도에 따라 산출됐습니다. 일본 건강보험법에 규정돼 있는 제도로, ‘초기 진료는 지역 병원에서, 고도·전문 의료는 큰 병원에서 받자’는 의료기관 기능 분담을 위해 도입됐습니다.

예컨대, 동네 A병원에 통원하던 환자가 병원에서 작성해준 ‘진료정보제공서’ 없이 지역의 큰 B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면, B병원에 일종의 페널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금액이 7700엔입니다. 2022년 10월부터 기존보다 2000엔이 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진료정보제공서가 없다고 해서 페널티를 내는 건 불합리하지 않으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겠는데요. 작은 병원이든, 대형 병원이든 어딜 가서 치료를 받는진 환자의 자유니까요.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 신토미 요양원 모습/EPA 연합뉴스

그런데 이러한 제도 배경엔 저출산·고령화가 있습니다. 고령화에 따라 병원을 드나드는 환자는 늘어나는데, 의료진은 줄어드니 최대한 ‘외래’와 ‘입원’의 기능, 또 병의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에 따른 의료기관마다의 역할을 구분하기 위함이죠. 일부 병원에 외래 환자가 집중되는 것을 막아 환자 대기시간을 줄이고, 의사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입니다. 소견서가 없는 환자는 아예 진찰을 봐주지 않는다는 병원도 있다고 합니다.

선정요양비 설명이 길어졌네요. 미에현 마쓰사카시 소방 당국은 올 6월 1일부터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된 후 입원하지 않은 이에겐 1인당 7700엔씩을 부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들은 ‘긴급성’이란 별도 조건 아래 선정요양비를 내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정말 위급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119 신고를 하도록, 적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가 기분 나빠한다’ 같은 실소 나오는 구급 전화는 들려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죠.

지난 25일 일본 FNN(후지뉴스네트워크)가 게시한 '구급차 이송, 입원 없으면 7700엔…' 제하 기사/야후재팬

반응은 다소 엇갈립니다. 25일 일본 FNN(후지뉴스네트워크)는 마쓰사카 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신고가 유료가 되면 점점 부르기 어려워질 거에요. (위급한 경우에도) 참아버릴지 모르죠.”(40대 여성) “소방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신고를 머뭇거리게 된다면 곤란해질 겁니다.”(60대 여성)

반면 일본 네티즌들은 대부분 소방국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가사키시가 올린 ‘구급 신고 시리즈’ 영상 여파가 크기도 했는데요. “허무한 사안으로 출동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될 수 있다” “구급차도 하나의 ‘의료 기관’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가용이나 택시로 내원하는 환자들과의 불공평도 있어 이러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나기사와 히데오/데일리스포츠(デイリースポーツ)

NHK(일본 공영방송) 출신 저널리스트 야나기사와 히데오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민 상당수가 구급차를 택시처럼 부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돼 왔음을 감안하면, 이번 마쓰사카시의 대응은 구급 시스템에 ‘신호탄’을 던진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질병이라는 건 사람마다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위급한 상황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야겠단 판단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일본 지자체들은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맞는지 판단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응급안심센터(#7119)’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맞는지 판단이 어려울 때를 대비, 일본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응급안심센터(#7119)’ 홍보 포스터/일본 총무성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19 유료화’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1월 31일 스물 세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쏟아지는 허무맹랑한 신고들에 결국 ‘119 유료화’ 칼을 빼든 일본 지역 소방 당국의 이야길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1~22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1등보다 빛났다… 재해 극복하고 마라톤 완주한 日이시카와팀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15/7QWFQYVL2BDFPCWTMGT3YQ5NA4/

자니즈 사태, 미뤄왔던 ‘결혼 러시’ 쏟아진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24/TLFXMW33JJG67EX3IZJGOAQQ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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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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