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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국여자역전 경주대회에서 1구간에 출전한 이시카와팀 고시마 리노(오른쪽)가 2구간 주자 사루미다 유카에게 배턴(’타스키’라고 부르는 어깨에 두르는 띠)을 넘겨주고 있다. 이날 이시카와팀의 성적은 47도도부현 출전 팀 중 43위에 불과했지만 그 어느 팀보다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교토신문

지난 14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국여자역전(駅伝) 경주대회(단체 마라톤)’. 47도도부현(일본 광역자치단체) 중 혼슈(本州) 북동부 미야기현 팀이 마지막 레인인 9구간에서 역전(逆轉)에 성공하는 드라마를 쓰며 29년 만의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미야기팀의 극적인 우승과 달리, 현지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은 43위에 불과했던 혼슈 중앙부 이시카와현 팀에 쏠렸습니다.

전국여자역전이 끝난 이날 오후, 일본 NHK 온라인 톱 뉴스는 <“힘내라 이시카와” 성원을 등에 업고 분투한 이시카와팀>이었습니다. 현지 공영방송이자 전국에 방영되는 최대 규모 방송사, 게다가 전국여자역전 대회의 주최사이기도 한 NHK가 우승팀이 아닌 ‘꼴찌에서 5위’를 한 이시카와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것입니다. NHK뿐 아니라 산케이·교토·주니치신문 등 다른 유력 매체들도 이시카와팀의 ‘스토리’에 일제히 주목했습니다.

지난 11일 일본 이시카와현 스즈시 주택가가 새해 첫날 발생한 규모 7.6 강진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모습. 주민들이 짐을 챙겨 무너진 집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날 이시카와팀이 높지 않은 순위에도 현지 언론의 전폭적인 주목을 받은 배경엔 지난 1일 이시카와 노토반도 일대를 강타한 규모 7.6 강진이 있습니다. 이 지진으로 현재까지 220명 이상이 숨지고 1만9000여 명이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평소 재해에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일본이지만, 새해 벽두부터 발생한 대지진에 일본인 대다수가 침울에 빠졌습니다. 도쿄 하네다공항 항공기 충돌과 기타큐슈 식당가 화재 등 다른 악재도 겹쳤죠. 이시카와현에선 현재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상당수가 아직 수습되지도 않아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피난처로 몸을 피한 주민들은 전기가 끊기고 식량이 바닥나는 열악한 환경 속 귀가할 날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지진 당사 지역인 이시카와현의 전국여자역전 경주대회 팀이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완주에 성공하자,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고 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국여자역전 이시카와팀은 재해의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기존 엔트리(13명) 변경 없이 그대로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지난해 일본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1만m 대표였던 이시카와팀 에이스 고시마 리노(五島莉乃·27)의 경우, 지진이 발생한 1일 고향 이시카와 가나자와시에서 도쿄로 향하는 신칸센에 타있던 참이라 27시간을 나가지 못하고 기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고 하죠. 어느 때보다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 좁은 기차석에 앉아 꼬박 하루 이상을 지낸 것입니다.

지난 6일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한 도로에 새해 첫날 발생한 규모 7.6 강진으로 인한 균열이 생겨 있다./로이터 뉴스1

이처럼 혹독한 출전 환경에도 이시카와팀은 ‘재해지에 조금이라도 기운을 주자. 결과와 상관없이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달리자’는 마음으로 대회장에 나섰다고 합니다.

출전하기 전, “어느 때보다 ‘이시카와를 위해’란 마음이 강하다. 달리기로 고향에 용기를 주겠다”는 포부를 남긴 고시마는 이날 6㎞ 되는 1구간에 출전, 2위와 35초 차가 나는 폭주(18분 49초)를 보이며 당당히 구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고시마가 달릴 때 대회 현장에는 “이시카와, 간바레(頑張れ·힘내)!”란 관중들의 성원이 수도 없이 들렸죠.

14일 일본 전국여자역전 경주대회에서 1구간 주자로 나선 이시카와현 팀의 에이스 고시마 리노(五島莉乃)가 구간 1위로 골인한 뒤 NHK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길가의 많은 관중에게서 ‘이시카와 간바레(힘내)’란 소리를 들어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달렸다”면서 눈물을 흘렸다./NHK

2구간 선수에게 배턴을 넘긴 고시마는 “길가의 많은 관중에게서 ‘이시카와 간바레’란 소리를 들어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달렸다. 많은 응원에 감사하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달리기가 이시카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닿았으면 한다”고 했죠.

9구간 선수였던 사와이 유즈하(澤井柚葉·23)도 “경기 입장 전부터 엄청난 응원 소리가 들렸다”며 “덕분에 힘들어도 열심히 뛸 수 있었다. 많은 성원이 힘이 됐다”고 했습니다.

제42회 일본 전국여자역전 경주대회 포스터. 전국여자역전은 1983년 시작했다. 교토신문·NHK가 주최하고 무라타기계가 후원한다. 47도도부현에서 한 팀(13명)씩 출전해 교토 고죠거리 (五条通り)에서 다케비시 스타디움까지의 42.195㎞를 아홉 구간으로 나뉘어 달린다. 매년 1월 둘째 주 일요일 열린다./교토신문

쇼와 58년인 1983년 시작한 전국여자역전 경주대회는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했습니다. 교토신문·NHK가 공동 주최하고, 무라타기계가 후원합니다. 47도도부현에서 한 팀(13명)씩 출전해 교토 고죠거리 (五条通り)에서 다케비시 스타디움까지의 42.195㎞를 아홉 구간으로 나뉘어 달립니다. 매년 1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열립니다.

이날 전국여자역전에 이어 한주 뒤인 21일 일요일엔 히로시마에서 ‘전국남자역전’이 열립니다. 남자 대회에도 ‘팀 이시카와’가 출전합니다. 이들이 여자 대회에서처럼 재해를 극복하고 당당히 완주에 성공, ‘겹악재’에 휩싸인 일본 새해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길 바랍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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