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어느 늦은 밤, 일본 도쿄 오쿠보공원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휴대전화를 보면서 나란히 서 있다./석간후지

작년 말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도쿄 여행을 갔을 때 미스터리한 풍경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머문 숙소는 도쿄 최대 번화가 신주쿠 가부키초의 ‘S호텔’이었는데, 늦은 저녁 약속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호텔 앞 오쿠보공원(大久保公園)에 젊은 일본 여성과 중년 남성, 외국인 관광객들 수십 명이 섞여 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5년 전 유학 시절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오쿠보공원은 도쿄 한인촌 신오쿠보(新大久保)로부터 불과 도로 하나만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여러 지역 축제들도 자주 열려서 도쿄 도민들에겐 익숙한 장소죠.

서울 광화문에서 포켓몬고를 즐기는 시민들(왼쪽)과 포켓몬고 게임 화면/조선일보DB

일본에 거주할 때에도 영문 모를 장소에 일본인 다수가 서 있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밤낮 시간을 불문하고요. 일본인 지인들로부터 알아낸 당시의 연구 결과(?)는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 그곳이 유명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를 게임화한 ‘포켓몬고(Pokémon GO)’의 ‘성지’이거나, 한국에서 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일일 육체노동 아르바이트 ‘도가타(土方·どかた)’의 집합 장소더군요. 오쿠보공원 앞 모여 있는 이들도 두 부류 중 하나겠거니 짐작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억입니다.

이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업무를 이어가는데, 한 현지 뉴스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쿠보공원 앞 의문의 집단에 대해 쓰인 기사였는데요. 이들이 포켓몬고도, 도가타도 아닌 다른 목적으로 모여 있었단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 오쿠보공원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휴대전화를 보면서 나란히 서 있다./유튜브

이들이 모여 있는 진짜 이유는 ‘불법 성매매’였습니다.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원피스나 치마 차림을 하고 우두커니 서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여성에게 남성이 접근합니다. 이후 물건은 없는데 가격을 묻는 음흉한 대화가 오갑니다. 성매매를 위한 ‘즉석 흥정’이죠.

그렇게 본인의 조건과 맞는 ‘파트너’를 찾은 이들은 은밀하게 약속된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뗍니다. 빈자리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들이 다시 메웁니다. 그렇게 오쿠보공원 앞 조명도 몇 없는 어두컴컴한 거리는 밤새 ‘문전성시’를 이루죠. 이들을 일명 ‘타친보(立ちんぼ)’라고 부릅니다. 주의하세요, 일본에서 성매매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일본 도쿄 오쿠보공원 앞에 서 있는 여성들에게 남성이 접근하고 있다./일본 벤고시닷컴

그러면 이 젊은 일본 여성들은 어쩌다 면식도 없고 신분도 모르는 이들에게 봄(春)을 팔게 됐을까요? 그 내막은 오쿠보공원이 일본 최대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해 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가부키초는 유명 식당들과 술집, 캬바쿠라(キャバクラ) 등 유흥업소가 즐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시설은 ‘호스트바’입니다. 35만㎡(약 10만평) 남짓인 면적에 300여 개의 호스트바가 운영되고 있죠. 한국에선 최근 유명 개그맨이자 가수 김경욱씨가 연기한 캐릭터 다나카(田中)가 이곳에서 일하는 호스트를 모티브로 해 화제였습니다.

방송인 김경욱이 연기하는 다나카. 일본 호스트바 직원을 모티브로 했다./뉴스1

호스트바는 여성 손님이 남성 접객원과 함께 술을 마시는 구조입니다. 맘에 드는 접객원을 지명해 음주하다 보면 한 잔, 두 잔 자신도 모르는 새 주문량이 늘어나 거액의 가격표를 만나보기 일쑤라 하죠. 그런데 이곳 호스트들의 주요 타겟층이 요즘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10~20대, 직업 없는 젊은 일본 여성들입니다.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과 다르게 연애도, 직장 생활도 몇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은 선뜻 자신과 술을 마시고 감정에 공감해주는 접객원들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 쉽기 때문이라죠. 그러면 무슨 수로 젊은 여성들을 포섭할까요? 2020년대 들어 일본의 가장 핫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토요코 키즈’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일본 도쿄 가부키초에서 활동하는 가출 청소년들의 모임 '토요코 키즈'/조선일보DB

토요코 키즈는 가부키초의 대형 영화관 ‘토호 시네마즈(トウホウシネマズ)’ 바로 옆(横·요코) 광장에 모여 활동하는 가출 청소년들을 말합니다. 모종의 이유로 집에서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X(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소통하다 이곳을 ‘아지트’로 삼았다죠. 최근까지도 이곳 극장 앞을 찾으면 이른바 ‘지뢰계’ 복장을 한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틱톡 영상을 촬영하는 등 놀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합니다. 저도 작년 말 방문했는데, 이들이 대뜸 화장지 수십장을 길바닥에 놓더니 불을 붙여 장난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호스트는 이들에게 접근합니다. 돈 없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밥도 사주며 가까워지다가, ‘남자친구’ 행세까지 하곤 이내 자신이 일하는 업소로 초대하죠. 처음엔 값싼 음료수 한 두잔으로 끝나지만, 호스트에게 ‘빠져든’ 이들을 수십~수백만원에 달하는 메뉴를 주문하게 만들며 내점에 중독시키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일본의 한 호스트바에서 직원들이 여성 손님을 접객하는 모습/KYABEL MEDIA

많아야 갓 20대 초반인 이들이 이러한 거액을 어떻게 지불할 수 있을까요? 아르바이트로 번 돈, 가족들에게서 받은 용돈 등으로 연명하다 결국 오쿠보공원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보도입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17일 <호스트에게 돈도 몸도 바치는 여성들로 혼돈화하는 도쿄 가부키초> 제하의 기사에서 이 같은 현실을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오쿠보공원에선 매춘객을 기다리는 마치 ‘서바이벌’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들의 가격 협상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죠.

지난 17일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 <호스트에게 돈도 몸도 바치는 여성들로 혼돈화하는 도쿄 가부키초>라는 기사.

이곳에 서 있던 한 18세 여성은 산케이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여름까지 (호스트바에) 다녔어요. 담당(지명 호스트)이 있어서, 한 달에 20만엔(약 170만원)정도 쓴 것 같아요. 현재는 가출 중입니다. 성매매로 번 돈을 (호스트바에) 바치는 것에 전혀 부담은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엔 천진난만함이 묻어났다고 합니다.

각종 언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자, 중앙·지방 정부도 칼을 빼들고 나섰습니다. 여성 고객들에게, 때로는 미성년자에게까지 지불 능력을 넘는 고액의 요금을 청구해 빚을 지게 하고, 결국 성매매란 악의 늪에 빠지게 하는 ‘악질 수법’에 대해 요시즈미 겐이치 신주쿠구 구청장은 17일 “엄연한 범죄 행위”라고 선포했죠.

요시즈미 겐이치 일본 도쿄 신주쿠구 구청장이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사회 문제로 부상하는 가부키초 호스트바의 '악덕 수법'이 “엄연한 범죄 행위”라고 경고하고 있다./마이니치신문

그는 “(호스트바의 악덕 수법으로) 빚을 진 여성들이 길거리 성매매 행위에 이르는 경우가 다수 있다”면서 “미성년자를 포함해 이 거리에 닿은 이들의 삶이 파멸해 가는 사태를 도시 수장으로서 막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에 소비자가 피해를 보기 쉬운 외상금에 대한 규제와, 호스트바 업계를 단속하는 별도의 룰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죠.

일본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16일엔 츠유키 야스히로 경찰청 장관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했고요. 지미 하나코 소비자 담당상은 “악질 호스트바에 의한 피해는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매우 문제”라며 “호스트 측이 여성 고객의 호의를 부당하게 이용해 따낸 매출을 소비자 계약법에 따라 취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11월 22일 열네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도쿄 가부키초 오쿠보공원 앞에 모여 있는 의문의 집단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한주는 규슈·간사이 출장으로 쉬어갑니다. 현장에서 일본의 생생한 모습을 배우고, 더 알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12~13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재생’ 바라며 10년 가꿨더니… ‘범죄 온상’ 변질한 日태양광시설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1/08/3GC5U6KDNNBUTPF7FBTCQQQGYI/

기시다가 TV나와 음담패설? 日정치인들 희생양된 ‘가짜동영상’ 파문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1/15/AJBCTDJHIZB3XMKQQFKCWEHGIU/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