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기획사 자니스 사무소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창업자에 의한 과거 연습생 등에 대한 성착취 사실을 인정했던 모습. 책임을 지고 사임한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오른쪽) 전 사장과 자니스 소속 아이돌 그룹 '소년대' 출신의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신임 사장(왼쪽)이 사과했다./연합뉴스

일본 연예기획사 ‘자니즈 사무소’(이하 자니즈)가 창업주 자니 기타가와(1931~2019)의 생전 연습생 성 착취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사명(社名)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히가시야마 노리유키(57) 자니즈 사장은 2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업주 이름을 딴 현재 사명을 오는 17일 ‘스마일 업(SMILE-UP)’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새 명칭의 회사는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일절 수행하지 않기로 해 1962년 설립 이후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로 군림해 온 자니즈가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가게 됐다.

‘스마일 업’은 자니즈가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4~6월 의료 종사자들을 돕겠다며 실시한 캠페인명이다. 히가시야마 사장은 ‘스마일 업’이란 이름의 회사는 기타가와에게 성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의 보상 업무만 수행하고, 소속 연예인들을 관리할 기획사는 조만간 새롭게 설립된다고 전했다. 새 기획사 명칭은 약 1000만명가량이 가입된 자니즈 팬클럽에서 공모(公募)받기로 했다. 운영 자본과 간부진 구성 등은 현재 자니즈의 형태를 일절 승계하지 않겠단 방침이다. 니혼테레비 등 현지 매체들은 “사실상 자니즈가 폐업하는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회견엔 지난달 7일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인정하고 사장직에서 내려온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57)는 불참했다. 후지시마는 기타가와의 조카다. 다만 회견에 참석한 자니즈 자회사 ‘자니즈 아일랜드’ 사장 이노하라 요시히코(47)가 그가 쓴 편지를 대독했다. 후지시마는 편지에서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하는 것이 좋을지, 가해자 친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우선 기타가와가 세운 회사를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타가와의 흔적을 세상에서 일절 없애려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본인 주도의 피해자 보상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들며 100% 보유 중인 자니즈 지분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자니즈가 공식 웹사이트에 개설한 피해 보상 창구엔 478명의 신청이 접수됐다. 이들 중 보상을 요구한 325명에 대해 내달부터 보상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히가시야마는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피해자가 1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자니즈는 또 성범죄 등 사내 인권 침해 문제를 방지할 지침을 마련하고, 회사 외부에 이를 감시할 인사를 두기로 했다. 지침 준수를 감시할 업무를 맡은 야마다 마사유키 변호사는 회견에서 “두 번 다시 인권침해가 간과되지 않게 하겠다”며 “인권 침해 신고는 사무소 직원뿐 아닌 연예인들도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노하라는 이날 “성 착취 피해자들과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비방을 삼가달라”고 호소했다. 그 역시 자니즈 인기 아이돌 그룹 브이식스(V6·1995년 데뷔) 출신으로, 현재는 연습생 육성을 맡는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노하라는 “피해자들은 수십년을 괴롭게 혼자서 문제를 끌어안았고, 이제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며 “그들의 용기 덕분에 회사가 바뀌게 됐다. 이들을 비난하는 일부 팬들은 발언을 멈춰 달라”고 했다.

이날 회견장은 질문권을 얻으려는 기자들의 고성으로 소란스러웠다. 사회자가 “침착해달라”며 거듭 만류해야 했을 정도였다. 지난달 7일 사장직에 오른 히가시야마는 본인에게도 제기된 연습생 성 착취 논란에 대해 “그런 적 없다”고 부정했다. 그는 “기타가와의 범죄는 신문에서 가끔 읽어본 적 있지만 큰 이슈로 번지지 않아 구체적으론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도쿄에서 소년 야구단 코치로 일하던 기타가와가 1962년 세운 자니즈는 포리브스(1968년 데뷔)·소년대(1985)·스마프(1991)·아라시(1999) 등 배출하는 가수마다 흥행을 거두며 일본 연예계 ‘최고 권력’으로 군림했다. 기타가와가 연습생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단 의혹이 1960년대부터 제기됐음에도 자니즈의 막강한 입지로 수면 위에 떠오르진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가 기타가와가 숨진 뒤인 올 3월 영국 BBC의 폭로 다큐멘터리 방영과 자니즈 출신 가수 오카모토 가우안이 피해 증언 등이 잇따라 파문이 커졌다. 덩달아 이미지가 폭락한 자니즈 소속 연예인들은 출연하던 광고 등에서 퇴출당하는 등 연예계에서 쫓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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