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익명의 명예훼손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 네티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의 '미투' 운동에 불을 붙였던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지난 2019년 12월 18일 성폭행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리한 후 도쿄지방재판소 앞에서 '승소'라고 쓰인 배너를 들어보이고 있다./로이터

21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이토 시오리씨가 일본 자민당의 스기타 미오 중의원 의원(국회의원)을 상대로 낸 220만엔 손해배상 소송에서 도쿄고등법원이 명예훼손을 인정해 55만엔(약 52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시이 히로시 재판장은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를 가지고 ‘좋아요’를 눌렀기 때문에 상식의 한계를 넘는 모욕 행위이며 불법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은 “소셜미디어(SNS)의 게시글 ‘좋아요’를 누른 행위에 배상을 명령한 사법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 2015년 4월에 이토씨가 일본 방송국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토씨는 일본의 미투(Me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상징이 됐다. 온라인에선 그녀에 대한 비방글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베개 영업의 실패’라는 악의적인 익명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베개 영업은 여성이 의도적으로 남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유리한 비즈니스 관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성 정치인인 스기타 의원은 2018년 6~7월에 트위터 비방글 25건에 ‘좋아요’를 눌렀다.

고등법원은 “스기타 의원은 같은 해 6월에 한 방송에 등장해 ‘(이토씨도) 여자로서 분명히 잘못한 점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트위터에서 ‘좋아요’를 누른 행위는 이토씨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배상 금액은 트위터에 팔로어 11만명을 둔 스기타 의원의 온라인 영향력에 따라 책정했다.

이토씨는 “이번 판결이 손가락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하나의 행위가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스기타 의원 측은 “판결 내용을 검토한 후, 향후 대응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