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전력이 일본 후쿠이현에서 운영하는 다카하마원전./교도신문

일본이 원자력발전소의 운전기간을 최장 60년으로 한 규제를 철폐하는 수순에 돌입했다. 일률적인 운전기간 규제에서 벗어나 각 원전의 안전 여부를 과학적으로 점검해 원전의 수명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원전 활용도를 높이지 않고, 석유·석탄·천연가스에 의존하는 후진국형 전력 시스템으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정책 선회의 배경에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조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원전 제로’의 반(反)원전 정책을 폈던 일본이 ‘원전 활용의 극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전 운전기간 60년 제한을 철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엄격한 안전 심사를 통과하는 원전에 대해선 운전기간 60년이 넘어도 계속 가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친환경을 위한 탈(脫)탄소를 위해선 원전의 원활한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보도했다.

경제산업성은 원전 정책 초안에 원전 운전 기간에 상한을 두지 않고, 규제위 심사를 통과하면 여러 차례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현재는 운전기간이 원칙적으로 40년만 가능하며 규제위의 판단에 따라 최대 20년간 한 차례만 연장 가능하다. 이런 규제는 11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반원전 여론에 들끓었을 당시에 만든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전에는 운전기간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었다. 당시 원전의 안전 규제 권한도 경제산업성에서 원자력규제위로 넘어가 이른바 ‘원전 규제와 원전 추진의 분리 원칙’이 정해졌다. 10여 년간 이 같은 엄격한 심사와 운전기간 규제에 따라 원자력규제위는 총 24기의 원전 폐지를 결정했다. 일본이 보유한 총 원전 수(57기)의 40%가 넘는 규모다. 일본에서 현재 운행 가능 원전은 총 33기인데, 안전 검사나 재가동 심사 등의 이유로 실제 가동 중인 곳은 7~8곳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가 원전 수명 연장에 나선 것은 2030년까지 운전기간 40년이 넘는 원전만 14기에 달하기 때문이다. 모두 연장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2060년에는 5기의 원전만 남는다. 일본은 신규 원전의 건설도 추진할 방침이지만, 단기간에 원전 10여 기를 건설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존 원전을 재가동하는 데도 지역 주민 반발에 번번이 막히는 상황에서 신규 원전 건설의 여론 장벽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른바 ‘60년 룰’이 그대로 남게 된다면, 2040년 말까지 14기, 2050년 말까지는 28기가 운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원전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운전기간 제한에 대해 반대해왔다. 후케타 도요시 전 원자력규제위원장은 “모든 원전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수명을 갖지도 않고, 기술적으로도 옳지 않다”며 “원전마다 각각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와 영국은 별도의 원전 운전 기한이 없다. 심사에서 안전성이 입증되면 계속해서 원전을 가동할 수 있다. 이에 비해 24기의 원전을 보유 중인 한국도 최장 60년으로 규제돼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부산 기장군의 고리 원전 1호기는 가동 40년 만에 영구정지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원전의 운전기간 철폐에 대해선 정부·여당 내에서도 신중론이 존재한다”며 “현재 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원전이 실제 운전하지 않고 정지한 기간을 운전기간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운전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여전히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원전은 찬반 여론이 갈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이 관철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달 들어 일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20%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당분간 ‘원전 수명 연장’ 반대 여론을 배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