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의 회계 부서에서 수십 년 일했던 A(60)씨는 지난 2018년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겼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상대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연봉은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1000만엔(약 9500만원) 안팎으로 적지 않았다. 그는 “전문성도 계속 살리고, 특히 오래 근무할 수 있다는 여건이 맘에 들어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 젊은 신입 사원을 선호하는 문화 등 탓에 30대 중반 이상의 경우 경력직 채용이 드물었던 일본에서 최근 50대 ‘시니어 인재’들이 각광받고 있다. NHK는 지난 15일 인력 서비스 업체 세 곳을 인용해 “작년 50대 직장인 중 이직에 성공한 사례가 지난 2011년의 7.9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일본 인재소개사업협회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1세 이상 이직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6229명으로 1년 전에 비해 34% 증가했다.
NHK는 “예전엔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신입 사원을 육성한다’는 통념이 굳건했던 일본 기업들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 인구 감소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 탓에 ‘즉시 전력감’을 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세이대학 이시야마 노부타카(石山恒貴) 교수는 “50대 사원은 ‘능력이나 체력이 떨어진다’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시니어 인재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의 업무 역량이 젊은 세대에 전혀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쿄에 사는 오카이 사토시(54)씨는 3년 전 이직한 채용 전문 스타트업에서 주력 사업을 도맡아 이끌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자회사 부사장을 지낼 정도로 고위직에 올랐지만 50대에 들어선 이후 정년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다 재취업을 결정했다. 회사 측은 그를 채용한 이유에 대해 “직원 대부분이 20·30대로 구성돼 있어 경험이 많고 조직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인력 서비스 업체 ‘엔재팬’ 관계자는 “시니어 인재는 자신이 담당했던 분야의 기술과 경험, 업계 인맥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특히 벤처·중소기업들에서 50대 인재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직원 100여 명의 평균 나이가 50대이고, 이들 대부분이 경력직 출신인 주오건설(中央建設)은 “현장을 맡을 수 있는 의욕과 기술이 있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영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인재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해왔던 업무가 아닌, 새 업무에서도 높은 성과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원 6000여 명 중 3분의 1이 50대 이상인 NTT커뮤니케이션은 지난 2014년부터 이들에게 다른 업무를 부여하거나 사내 해외연수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중 76%가 “성과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승진 사례도 과거의 3배로 늘어났다. 사원 이시이 마사미(石井正美·55)씨는 “회사는 ‘젊은 세대가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할 날이 10년도 넘게 남았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며 “내 커리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50대 직장인들이 회사를 옮길 때 굳이 높은 연봉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인기 비결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지난 2020년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이직 후 급여가 전보다 오른 경우는 35세 이하에서 50%에 달했던 반면 50세 이상은 30% 안팎이었다. 취업 알선 업체 마이나비는 “정년에 가까워진 50대는 급여보다 복리후생, 근무시간 등 다른 조건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시니어 인재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NHK는 “조만간 ‘정년 70세’ 시대가 정착하게 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50대 직원들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