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돼 전후(戰後)엔 연합국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이나 장기형에 처해지면서도 저희는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한일 양쪽 사회에서 차별과 편견에 노출돼 힘들고 고단하게 살았습니다.”

한국인 BC급 전범(戰犯)자와 유족 모임인 동진회(同進會)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10일 탄원서를 보냈다. 탄원서는 “(한국이) 일본 정부에 대한 외교를 추진해, 역사적·정치적인 책임을 완수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한국인 BC급 전범은 일본군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국의 전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148명이다. 23명은 사형당했다. 도조 히데키 당시 내각총리와 같은 일본 수뇌부 7명(사형)이 A급이고, 일반 군인과 군속 전범 5700명을 BC급이라고 부른다.

고(故) 이학래 씨

한국인 BC급 전범은 일본의 패전으로 한국이 해방됐음에도 여전히 일본 국적으로 전범 재판장에 섰다. 예컨대 이등병보다 낮은 군속인 고(故) 이학래 씨는 17살 때 징집당해,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연합군 포로를 노역시키는 역할이었지만 전범 재판에선 ‘수용소 관리 총괄(he occupied the position of the Camp Commandant)’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같은 감옥의 사형수 임영준씨가 교수대로 갈 때 같은 사형수인 나보고 ‘꼭 살아나가서 임씨는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도쿄 스가모형무소에서 11년 복역 후 감형받아 출소한 이씨는 동진회를 결성, 작년 3월 작고 전까지 BC급 전범의 명예 회복을 위해 활동했다.

BC급 전범은 한일 양국에서 버려진 존재였다. 일본은 자국인 전범을 위해선 법률까지 제정하고 물심양면 지원했지만 한국인 BC급 전범에겐 일본 국적을 박탈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 사회는 연합군의 전범 재판서 유죄가 선고된 이들을 친일파로 매도했다. 허영(1955년), 양월성(1956년) 등은 자살했다. 동진회는 일본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각각 제소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한국에선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동진회를 돕는 일본인 사회운동가 아리미쓰 씨는 “BC급 전범은 위안부나 징용공과 달리, 증거가 너무나 명확한 전쟁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탄원서는 “한국이 일본 정부와 외교 교섭 때 정정당당하게 BC급 전범자 문제를 제기해 조기 해결을 강하게 요청해주길 바란다”라고 썼다. BC급 전범이었던 박창호씨의 아들인 박래홍 동진회 부회장은 “BC급 전범 본인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지만, 2세로서 그분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