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목욕탕 이용 요금을 아래와 같이 조정합니다.”
최근 도쿄 시나가와구의 작은 동네 목욕탕은 ‘목욕 수건 대여료’를 100엔에서 150엔으로 50% 올렸다. ‘사우나 시설 이용료’는 150엔에서 250엔으로 뛰었다. 전기료와 가스비가 잇달아 오르면서 가격 조정 없이 목욕탕을 운영하는 일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목욕탕 관련 요금이 50~60% 오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일본 서민 생활을 지탱해 온 저가 상품조차 줄줄이 가격이 오르고 있다. ‘최저가’ ‘균일가’를 앞세워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던 ‘100엔숍’은 직격탄을 맞은 대표 업종으로 꼽힌다. 값싼 제품을 수입해 되파는 사업 구조인데, 제품 상당수가 가격이 급등한 원유를 가공해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이다. 니혼TV에 따르면, 100엔숍 ‘와츠’는 상품 100여 개의 발주를 일시 중단했다. 가격을 조정한 뒤 다시 판매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다이소는 ‘300엔숍’ 모델에 더 주력하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이미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일부 영세 100엔숍 매장에선 ‘132엔’ 등 애매한 가격표가 등장하기도 했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기던 ‘원 코인(One Coin)’ 메뉴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일본 직장인 상당수가 500엔짜리 동전 한 개로 편의점 도시락을 구입해 점심 한 끼를 해결했지만, 최근 패밀리마트·세븐일레븐·로손 등 3대 편의점은 일제히 도시락과 샐러드, 즉석식품의 가격을 2~15% 인상하기로 했다. 규동 업체 ‘요시노야’ 등 저가 외식 업체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수입 밀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가운데, 엔저가 겹치면서 ‘사누키 우동’ 본고장 가가와현은 우동 값을 올렸고, 오사카 지역은 지역 명물인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 등의 가격 조정에 나섰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중저가 의류를 앞세워 불황 속에서도 성장한 대표적 기업인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대표도 최근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일본의 ‘저렴한 물가’는 경제와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한 ‘잃어버린 30년’ 동안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지만, 엔화 가치 급락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으로 한계에 내몰린 것이다. 15일 엔 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26엔 중반대까지 치솟아 2002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