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머리는 일률적으로 검게 염색한다’, ‘투블럭 커트 등 부적절한 머리 스타일은 허용할 수 없다’, ‘속옷 색은 학교가 지정한 것으로 통일한다’...
최근 몇 년 일본 사회에서 학생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왔던 이른바 ‘블랙교칙(校則·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부당한 교칙)’ 5가지를 도쿄도(都) 내 도립(都立) 고교들이 올해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13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도립고교 240곳 중 216곳이 블랙 교칙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4월 신학기부터 이를 폐지하도록 지난 10일 정례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도쿄도 교육위가 지정한 블랙 교칙은 △머리를 검게 물들이도록 하는 것 △머리색이 검지 않거나 천연 곱슬일 경우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 △속옷의 색을 학교가 지정하는 것 △귀 위의 옆머리만 짧게 자르는 ‘투블럭 스타일’을 금지하는 것 △'고교생답다’ 등의 애매한 표현을 사용해 학생을 지도하는 것 등 총 6개 항목이다.
각 고교는 학생·학부모와 함께 해당 교칙들의 폐지 여부를 논의한 결과, 머리색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을 제외한 5개 항목을 모두 폐지하기로 했다. 선천적인 머리색과 모양을 미리 입증하는 교칙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 측이 남겨달라고 요구하는 35개 학교가 유지하기로 했다.
‘블랙 교칙’은 지난 2017년 오사카부의 한 여성이 고교를 상대로 소송을 낸 뒤로 일본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여성은 타고난 갈색 머리를 검게 염색하도록 한 고교 교칙을 강요 당했고 “검게 염색하지 않는다면 학교에 올 필요도 없다”는 등의 폭언을 듣다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됐다며, 학교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오사카지방법원은 2021년 2월 학교 측이 여성의 머리카락이 천연 갈색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두발 지도를 한 것은 위법한 일이 아니라며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후 수년간 일본 사회에선 ‘블랙 교칙을 없애자’라는 운동이 벌어졌다. 블랙교칙 실태를 요구하는 서명에 6만334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칙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중·고교생들은 직접 ‘황당한 교칙’을 고발하고 나섰다. 일본 가고시마시의 한 중·고교의 경우 여학생들의 포니테일(머리를 한 갈래로 묶는 것)을 금지했는데, 여학생의 목덜미가 노출될 경우 남학생을 자극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됐다. 치마와 양말이 각각 무릎과 발목을 반드시 가리도록 하거나, 속옷 색을 흰색으로 규제하는 것, 겨울에 V넥 스웨터는 입어도 되지만 가디건은 안 된다는 등의 교칙도 전국 각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학생의 투블럭 스타일이 금지되는 이유도 화제를 모았다. 도쿄도 교육위원장이 투블럭이 교칙으로 금지되는 이유에 대해 “외모 등의 원인으로 학생들이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학생을 지키기 위한 교칙”이라고 답변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조회수 약 600만회를 기록한 것이다. 당시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투블럭은 상대적으로 큰 머리 모양을 보완할 수 있고, 케이팝 아이돌들이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남학생들이 선호하는 일반적인 머리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같이 블랙 교칙 폐지 요구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높아지자, 지자체 도쿄도가 먼저 도립 고교의 블랙 교칙 폐지를 결정하고 나선 셈이다. 도쿄도 교육위에서 블랙 교칙 폐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해 온 야마구치 가오리 위원은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훌륭한 결정이지만 이제서야 결정된 것은 유감”이라면서 “일본은 규칙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룰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